[JIFF2008] 한국 단편의 선택 5(Korean Shorts 5, 2008)

영화보기/JIFF2008 2008. 5. 6. 13:00

한국 단편의 선택 5(Korean Shorts 5) (5/6, 11:00, Megabox9, 74min)

이 시간대에 Synching Blue를 보려고 계획했지만 끝내 표를 예매하지 못했다.
한국단편의 선택에 대한 막연한 기대 때문이었지.
한국단편의 선택 1을 본 이후로 단편에 대해 무게감이 쏠리게 되었고
덕분에 현장판매분을 구입하여 보게 되었다.
내 왼쪽에는 전주에 5일간 있는 동안 옆에 앉은 사람중 가장 아름다운 여성이 앉았었다. 하악하악~
(현경이는 예외 ^^;;)
작품수는 총 네 편.

1. 전병파는 여인(Senbei selling g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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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테스크한 도시괴담.
사실 영화에서 많은 단서가 주어지기 때문에 무엇을 비판하려는 얘기인지 이해하기가 어렵지는 않다.
속박되어 있는 여주인공 순이는 거리에서 남자들의 육체를 그러모으고,
그녀를 묶고 있는 실의 주인은 그런 남자들의 신체 일부를 자기것으로 하여 원하는 바를 이루려고 한다.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로 구분되는 희생자들의 면면하며 순이의 발목이 묶여있는 모습, 용 그림과 같이
의도적인 상징들은 영화 여기저기서 나타난다.
블루칼라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육체를 착취하던 조직은 세를 뻗쳐서 화이트칼라에게까지 침투하지만
교활한 그들에게는 수단이 잘 먹히지 않는다.
결국 패배자 및 피착취자는 힘없고 가난한 공장노동자와 환경미화원,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 뿐이다.

영화의 말미는 좀 의외였다.
사실 명수가 순이를 구원해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지만(그러면 정말 로맨스 판타지가 될 뿐이지..ㅋ),
적어도 순이가 자신이 들고있는 작두로 최소한 자신의 발목이라도 끊을 줄 알았다.
신체절단 및 신체훼손이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영화 전반의 분위기에서 그정도는 해줄 줄 알았지.

흠...근데 결국 남은 재산이라곤 몸뚱아리뿐이라는 하위계급의 생존논리에 의하면
신체훼손은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긴 하다.
이마가 조금 까진 정도로 쉽게 쓰러지고 명수에게 곁을 내주던 순이의 모습은 상징 그 자체이다.
 
용이 되려는 자, 그리고 마네킹으로 대변되는 그를 돕는(그를 조종하는) 세력들 앞에서
힘없는 사람들의 저항은 무의미할 뿐이라는 다소 비극적이고 회의적인 결말.
그 무엇을 떠나서도 이해하기 쉬운(!) 많은 상징들로 들어차 있어서 상상력을 자극해주었던 영화였다. ㅎ


2. 십우도4-득우: 두 모과(TEN OXHERDING PICTURES #4 “CATCHING THE OX-TWO CHINESE QUI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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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 이상 처잤다. -_-;
하지만 두 모과의 상반된 결말은 시사해주는 바가 있다.
득우를 해도 소를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그 소가 어떻게 성장할지는 각자의 몫인 것이다.



3. 동면(Hibernation)

작년 켄 제이콥스의 움짤영화(--;;;)를 한 시간동안이나 참아내었던 나로서는 이 영화는 아주 재미있는 영화였다.(하지만 이 영화가 시작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큰한숨으로 짜증을 표현해내고 잠들었으며, 또한 뛰쳐나가기까지 했다.)
감독 자신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일지 몰라도
어쨌든 한 사람의 과거에 대한 기억을 단편적인 이미지의 조합으로 보여주는
실험영화냄새 제대로나는 그런 영화였다.
반복되는 이미지의 교차결합.
어떠한 장면은 다른 장면보다 다소 길게,
아니면 진짜 몇십분의 1초간격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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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의 기억 또한 이렇게 유사하게 흘러가지 않을까.
머리 속에 남아있던 과거의 순간들은 장편영화처럼 순차적으로 진행되기보다는,
순간순간의 이미지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그 속에서 우리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고 의미를 부여하는 법이니까.
출생의 순간부터 유년 시절, 성년에 이르기까지의 머리속에 이미지들은
분명 다들 분절되어있고 또 의미나 순서없이 머리 속에서 휙휙 지나가곤 한다.
일상적인 꿈 속에서일 수도 있고, 또 내가 영화제 기간 동안 많이 경험했던 꼬박꼬박 졸음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사실 이러한 꿈을 오래 지속시킬 수 있는 방법은 겨울잠이 유일할 수도 있긴 할 것이다.
그것도 현실과 벗어나서 순수하게 과거의 기억만을 머리속에 담을 수 있을 정도로 오래 잠을 자기 위해서는.



4. 숨(The Breath)

역시 사람들 짜증을 유발하는 영화이지만 꽤 많은 생각을 하며 봤다.
3번의 동면과 마찬가지로 사운드는 전혀 없다.
그저 대나무의 모습을 원경, 근경에서 찍은 이미지들을 조합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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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미지라는 것에 대해서 좀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다.
우리는 어떤 음악을 들으면 청각적인 자극임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그에 따른 시각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터키행진곡'을 들으면 진군하는 군대의 모습이 떠오르고, '도나우 강의 잔물결'은 도도히 흐르는 강의 모습이 그려진다. 또다른 면에서 볼 때 후각으로 얻을 수 있는 어떤 냄새나 향은 누군가를 그리워하게 하거나, 나아가 어떤 장면들을 머리속에 그리게 하곤 한다. 시각적인 자극은 그만큼 사람에게 중요하게 작용하며, 차후에 비록 다른 감각으로부터의 자극이 입력되는 순간에조차도 어떤 사건의 기억과 인식을 이루는 기초로써 작용하는 것이다.

뭐 아무튼,
그렇다면 그 역은??
예를 들어 우리는 어떤 이미지를 보고 소리를 듣거나 촉감을 느낄 수 있을까.
대숲에 바람이 부는 이미지를 보며 잎사귀의 사락거리는 소리가 느껴지거나,
대나무의 줄기를 훑듯이 지나가는 카메라와 함께 그 목질을 느껴볼 수 있지는 않을지.
싱싱한 대나무 가지와 잎사귀, 그리고 그 끝에 맺힌 이슬을 보며
대숲의 향을 맡을 수 있지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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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없이 계속되는 이미지를 보며 오히려 더 대숲의 소리를 듣고 싶었다.
(태초의 생물들은 시각이 전혀 없었지만, 빛에 대한 갈망 때문에 시각기관이 진화되었다는 설을 본 적이 있다.)
또 그만큼이나 대나무를 만지고 싶었고 또 냄새를 맡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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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와 조화하며 살아가고 있는 대나무의 모습을 숨을 죽이며 바라보며 영화 내내 느꼈던 갈망과 달리 영화가 끝났을 때 오히려 대나무의 향기가 주위를 휘감고 있는 것 같은 환각(!)마저 들었다면 과장일지.


(나름대로 평점 : ★★★, 5개 만점)

p.s) 옆자리 그녀에게는 결국 말을 못걸었다.
       끝나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나가 총총히 사라져버렸으니..
       마지막까지 쿨하기는...쩝.. =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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