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블랙 스완

영화보기 2011. 3. 13. 23:43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예술에 있어서의 심리학적 접근을 스릴러라는 방식으로 세련되게 이끌어낸 또하나의 예술품.

<블랙스완>은 대런 아로토프스키의 최근작이자 아카데미에 다수 노미네이트되면서 기대작으로 입을 모은 작품이다. 감독부터 시작해서 주요 등장인물이 모두 유태인이라는 세간의 속설도 한몫했지만 무엇보다 주연을 맡은 나탈리 포트먼의 연기가 주로 회자되곤 하는 아이템이었다.

이 영화는 예술가의 심리를 다루고 있지만 사실 보통사람들의 삶과도 무관하지 않다. '백조의 호수'의 백조와 흑조는 프로이드의 이드-자아-초자아 이론을 연상시킨다.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로부터 억압받으면서 완벽함을 요구받고 '데미안'의 빛의 세계에서 자라온 니나는 초자아의 현신인 백조를 연기하는 데에 있어 더없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그 반대급부로 욕망과 본능을 의미하는 흑조에 대한 연기는 불가능할수밖에 없다. 단장은 끊임없이 본능과 욕망 속에 숨겨진 블랙스완, 리비도의 표출을 보여달라고 주문하지만 테크닉이 아닌 진정한 창조의 경지를 넘기란 쉽지않은 일이다. 신참으로 발레단에 들어온 릴리는 거꾸로 이드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거침없는 춤사위와 본능과 욕구에 충실한 삶. 집을 알기 위해서는 뒤를 밟는 일쯤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그녀와의 친밀 혹은 적대를 통해 니나는 내면 속에 억눌려있던 욕망의 검은 그림자를 느끼며 신경증의 소용돌이로 차츰 휘말려든다.

완벽한 예술은, 또한 완벽한 인간은 자아의 합일 속에서 이루어진다. 백조의 여왕은 이드와 초자아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대상을 의미하며 단장은 니나로부터 흑조의 가능성을 느끼고 백조여왕 역을 맡긴다. 그러면서 성적인 코드를 이용하여 욕망을 표현하는 법을 교육한다. 그녀를 사랑하지만 또 한없이 엄격하여 어린 시절부터 작은 일탈도 용납하지 않았던 어머니를 극복하는 과정 속에서, 흑조로 거듭나기 위한 몸부림에서 나타나는 자기파괴의 흔적은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관통하는 주요한 텍스트이다. 이미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 싶어 베스의 물건들을 훔치고 또 누구보다 완벽한 흑조였던 베스를 이겨내는 과정에서도 나타나지만 그녀는 천성적으로 누구보다 강한 욕망의 소유자였으며, 단지 억압과 초자아의 무게에 짓눌려있던 욕망을 단시일에 끄집어내야 하기 위해서는 어쩔수없는 파괴의 과정을 거쳐내야 할 수밖에 없다. 불안한 꿈과 차츰 빈번해지는 환상 속에서 내면으로부터 들려오는 검은 날개의 퍼득거림은 본능 그자체인 흑조를 인정하라고 다그치는 그녀 스스로의 외침이다.

백조의 원천인 어머니를 밀어 넘어뜨리고, 흑조인 베스를 찌르면서 니나는 양쪽 모두로부터 느끼던 억압과 불안을 극복해내고 자기파괴를 도약판으로 삼아 진정한 백조여왕으로의 탄생을 맞이하게 된다. 최고의 예술은 본능과 초자아가 완벽한 균형을 이루어낸 상태이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예술가들은 기질적으로 강한 본능 욕동을 지니며 이것을 자유롭게 분출하고픈 욕구가 유난히 큰 사람들이다. 그러나 욕구가 큰 만큼 거세불안 또한 크기 때문에, 결코 그 욕구를 현실 대상을 향해 자유롭게 분출하지 못한 채 내향화한다. 그래서 이들은 신경증에 걸리지 않기 위해 자신의 억압된 본능 욕동을 예술적 상징으로 변형시켜 분출하려고 평생동안 지속적으로 노력한다."                   

 - 프로이트와의 대화, 이창재 -


이전의 영화들에 있어서도 모두 훌륭했지만, 나탈리 포트만은 이 영화 하나로도 영화사에 있어 레전드로 오를 만한 연기를 해내주었다. 거기에 아로노프스키의 감각이 더해졌으니 영화가 이렇듯 수작이 나오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영화 내내 온몸에 전율을 느끼면서 영화가 끝난 한참후까지 떨림이 멈추지 않았던 것은 아주 오랜만의 경험이다. 간만에 이 블로그의 영화평을 쓰고 있는 것을 보면 영화라는 예술이 주는 진동 속에서 살아있음을 느끼게 된다.


나름대로 평점 : ☆☆☆☆☆ (5개 만점)

'영화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JIFF2011 (4.28~5.6)  (0) 2011.02.27
[2009] 그랜 토리노  (0) 2009.04.12
[2009]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0) 2009.04.03
[2009] 슬럼독 밀리어네어  (0) 2009.03.22
[2009] 워낭소리  (0) 2009.03.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