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슬럼독 밀리어네어

영화보기 2009. 3. 22. 22:00


아카데이 8개부문을 휩쓸며 올해 최대의 화제작 중 하나로 떠오른 슬럼독 밀리어네어. <쉘로우 그레이브>와 <트레인스포팅>으로 필모그라피를 시작해왔던 대니 보일 감독의 포텐이 제대로 터진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대니 보일 특유의 영상미와 빠른 비트를 활용한 전개, 그리고 영화 곳곳에서 드러나는 현실에 대한 직시는 그 좋았던 90년대의 감성을 21세기가 시작된 지 1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유효하게 하고 있다. 이완 맥그리거를 선봉에 내내세웠던 초기작들과 달리 <28일 후>를 거치면서 감독이 자신의 성격과 스타일을 명확히 하면서 거장으로의 길에 발을 올려두고 있는 모습은 우리가 또 한명의 위대한 감독의 등장을 바라보고 있음을 실감케 한다.

제3세계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나를 매혹시킨다. 남미와 아프리카의 영화를 볼 때에 느껴지는 감수성은 우리나라의 지난 현대사를 바라볼 때의 그것과 교차되면서 한층 영화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인도는 오래전 과거에 영국의 식민지(대니 보일은 영국인이다)였으며, 이제는 그 아(亞)대륙의 잠재성을 폭발시키며 중국과 함께 세계무대에 영향력을 발휘하려고 움직이고 있다. 개발도상국의 발전과정이 그렇듯이 거기에는 항상 격변과 혼란이 따르게 마련이고, 화려한 겉모습 뒤에 숨겨져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존재하곤 한다. 영화는 역사상 최고액의 퀴즈쇼 당첨금 수령자의 화려한 전면 뒤에 숨겨진 이면을 들여다보고 그 상반된 이미지를 통해 보다 현실에 대해서 날카롭게, 하지만 세련되게 이야기하고 있다. 숨겨진 뒷얘기는 항상 재미있는 법이지만, 천박하거나 거추장스러움을 배제하고 대니 보일이라는 감독의 손을 거치며 드라마와 영상미 양쪽을 거머쥘 수 있었다. 거기에 발리우드로 대표되는 인도의 영화 스타일을 차용하면서도 계속적인 스피디한 움직임, 빠른 비트, 영상충격, 교차편집 등 헐리우드의 디지털 형식을 도입하여 경쾌함의 또다른 얼굴을 제시한 것은 모험적이면서도 뛰어난 시도이다. 발리우드의 새로운 지평을 외국으로부터 찾게 된 것일지도.

How did it do it? 이라는 질문에 영화는 D. It's written이라는 답을 제시하고 있다. 퀴즈쇼라는 프로그램은 사실 단기간의 공부를 통해서 상금을 따낼 수 있는 제도로 보이진 않는다. 개인이 살아가면서 얻게 되는 모든 경험과 지식, 거기에 특별한 인상을 담아서 기억되는 모든 것을 걸고 승부를 해야 하며, 사실 어느 정도가 지나면 '어떤 것'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공부보다는 살아가면서 얻은 선험적인 경험이 시간이 지날수록 큰 힘을 발휘하게 된다. 주인공 자말은 빈곤, 사회문화적 격변, 종교갈등, 범죄와 폭력으로 가득차있는 유년기 및 청년기를 지내오면서 경험을 잠재의식 속에 잘 정리해왔고 최고의 무대에서 유감없이 발휘하며 승리를 거머쥐게 된다. 그를 취조하는 경찰이나 방해하는 쇼 진행자(프렘)의 역할도 그가 퀴즈쇼를 승리하는 데 있어서 작용한 운명의 위력을 반증하는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말 그대로 It's written인 것이며, 단순히 경제적, 물질적인 보상 이외에도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할 수 있는 운명적인 승리마저 거둘 수 있도록 한다. 헐리우드식의 해피엔딩이 아닌 인도로 대표되는 동양의 운명론적인 생각이 도입되면서 범세계적, 아니 어떤 초월적인 힘에 대한 사람들의 암묵적인 긍정을 내면화한 영화로도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세계 체제안에서 인도라는 국가가 가진 대안적인 역할에 대한 고민도 무시할 수 없다. 인도는 무한한 인적,문화적 잠재력을 지니고 점차 도약하고 있으며 중국과 함께 제1세계의 시민들에게는 위협과 경외심을 이끌어내고 있다. 그러나 현재 체제가 금융위기 등으로 혼란을 겪고 있는 지금 새로운 대안으로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애쓰는 인도의 모습과 역사의 흐름은 제3세계의 거대국가들이 안고있는 비참함과 영광을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 주목해야 할 일이다.


p.s) 라티카 역으로 나왔던 Freida Pinto





나름대로 평점 : ★★★★☆ (별 5개 만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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