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질...
일상보기 2009. 10. 25. 03:39기자가 되면 행복할 줄 알았다
하지만 기자이기 때문에 하지 못하는 게 너무도 많다.
기자라는 이유로..
용산 참사 추모 시위현장..행사의 의미와 내용은 중요하지 않았다.
기자에겐 충돌이 있었는지, 몇 명이나 연행됐는지, 집회인원이 집회측 추산 몇 명, 경찰측 추산 몇 명인지, 경찰은 몇 개 중대 몇 백여명이 투입됐는지가 더 중요했다.
기자는 말 그대로 전달자였다. 집회 현장에서 주먹을 쥘 수 없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지독하리 만큼 슬픈일이다. 하지만 눈물을 보여선 안 된다. 혼자 삭힐 뿐이다.
감정을 숨겨야 하는 이 괴로움..
열심히 전화기를 들고 장례형식이 국민장인지 가족장인지 취재하고, 국무회의 모두발언에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몇 일 장으로 장례가 치러지며, 언제 어디서 영결식이 있을지 촉각을 곤두 세우고 있다.
한 걸음에 분향소로 달려가고 싶지만 갈 수가 없다.
시민된 입장으로 몰래 가서 분향하고 싶지만, 취재하러 나온 아는 기자들 눈에 혹시라도 띌까봐, 사진이라도 찍힐까봐 조마조마 할 수밖에 없다.
기자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슬퍼하고 애도하고 싶다.
하지만 일이 되다 보니 함부로 감정을 드러낼 수 없어 괴롭다.
기자라서 이럴 때 참 힘들다. |
솔찍히 제가 여기에 글을 올릴 자격이 있는지 몰라 망설이다가... 그냥 답답한 마음에 적어봅니다.
나이 서른이 되기 전에 내 인생의 목표인 기자가 됐고, 기자가 된 이후엔 기자상이 목표였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뛰어가면서 있었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더군요.
사회부에서 타 부서로 부서를 옮긴 뒤부터가 문제의 발단이었죠.
출입처와의 술자리에서 종종 이런 말들이 나오더군요. "젊은 여기자가 술따르니 술맛도 참 좋네, 이런자리 종종 마련합시다"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밥상을 들어엎고 멱살을 쥐고 흔들고 싶었지만 그 자리에 가기 전 부장이 했던 말이 떠오르더라고요. 출입처에서 봐주는 신문부수, 연간 광고액 등등의 관계가 머릿속을 스치면서 참고 또 참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만약 그들이 경찰이었으면...아시죠?? 밥상 드러엎고 다음날 형님~ 하면서 또 술자리 갖으면서 쉽게 풀어갈 수 있지만 그 조직은 경찰조직과는 너무 다른 조직이기에 참을 수 밖에 없는 현실에 울분을 토했죠.
가는 출입처 마다 그런 소릴 한두 번 들은게 아닙니다. 4~50대 아저씨들에겐 어린 제가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엔 엄연히 그런 발언은 성히롱입니다.
전 단지 기자이고 싶었습니다. 술 접대 하는 사람도 아니고 여비서나 여종업원도 아니도 하물며 여자이길 바란적 단 한번도 없었지만 그들은 저를 마냥 여자로 보더군요.
한참을 고민하다가 같은 부서 선배에게 이런 고민을 상담했지만 "야~ 나 같아도 너처럼 어린 여자애가 출입기자라고 오면 이쁘고 일할맛 날텐데 뭐~" 절망적이었죠. 같은 조직에 있는 사람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건... 더 이상 말을 꺼내고 싶지 않더라고요.
이 고민을 말도 못 하고 끙끙 앓고만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민끝에 회사를 박차고 나온지 한달이 다 돼가네요...
근데 지금 죽기보다 싫게도 그 회사에 다시 들어가야 하는 상황입니다. 제게 기자는 돈벌이가 아니었는데 기자는 제 인생의 꿈이었고 그 꿈을 이루면서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참 행복하기만 했는데
휴...답답하네요. 제가 이상한 건 가요?? |
- Daum 언론인을 꿈꾸는 카페에서 발췌 -
2009 연합뉴스 31기 수습기자공채 필기시험 전날 밤.
(모집 로고는 "24시간 깨어있는 눈으로 당신의 미래를 열어가십시오"란다.)
현직 기자들이 남겨놓은 이러한 글들을 보며 나는 또 잠못 이룬다.
그녀가... 그녀인 채로 숨을 쉬면서 살길 바라는 것은
이제는 더이상 바랄 수 없는 망상일 뿐.
글이라는 것에도 사람이 담겨 있어야 할 텐데,
그 안의 팩트와 통계만을 중요시하는 이들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서는 원초적인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다.
수려해 보일지 몰라도 글맘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건조한 글귀.
힘겹게 존재하는 행간마저 밥그릇과 연관될 수 밖에 없는 기사라는 이름의 생산품 공정작업.
찌질함의 정도가 강렬할수록 이들 사회에서는 한층 인정받는 것이리라.
제 4의 권력이라는 이름의 허망함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