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시절
일상보기 2009. 1. 17. 20:552003년 7월 16일부터 2005년 7월 25일. 대한민국에서 육군으로 복무한 시간으로 총 740일이었다. 남들보다 늦게 군대에 가서 무엇보다 마음고생이 심했던 시기였고, 또 20대의 딱 중간에서의 사회와의 단절 때문에 많은 것들을 잃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 기간 동안 대전의 육군대학에서 병정놀이를 하면서 내가 평생 만나보지 못했을 사람들을 다 만나봤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나는 7월 군번이었다. 훈련소 기간 내내 찌는 듯한 더위와 싸운 후, 자대배치를 받은 수많은 훈련병들을 실은 열차가 대전역에 멈추었고, 통신학교로 가는 훈련소 동기들과 떨어져 대전역 TMO에서 혼자 불안하게 앉아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는 9월초였고 우울한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씨였다. 중대행보관이었던 박상사가 날 데리러 왔었고, 대전 시내를 가로질러 자운대로 들어가던 길도 떠오른다.
교무처 행정병으로 보직을 명 받고 내무실 막내생활을 한 지 며칠만에 동기가 들어오고, 두세달이 지나니 어느 새 내무실에만 후임이 다섯명이 되었다. 5월 군번이었던 방 병장부터 10월 군번 세 명까지 교수부의 아홉명의 응집된 군번들은 우리 중대 내에서도 얘깃거리가 되었다. 뭐 아무튼 이 사람들이 군생활 동안 가장 많이 얼굴을 보면서 부대끼며 지냈던 사람들일 것이다. 군생활이 끝나 전역하던 날, 이들로부터 받았던 헹가레는 웃음짓게 만드는 몇 안되는 군생활의 기억 중 하나이다.
저녁에 그 중 한 명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한수철. 9월 군번으로 내 바로 밑 후임이었고, 처부도 같은 곳이라서 군생활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한 놈 중 하나이다. 후임 중 한 명이 오늘 대전에서 결혼을 했고, 그 때문에 그 응집된 군번 아해들이 축하해주기 위해 결혼식이 행해진 대전에 몰려갔다가(하필이면 대전이다.) 뒷풀이를 하는 도중이었던 거 같다. 술에 취해서 반쯤 혀가 꼬부라진 목소리에서도 예전의 그 전우애라는 이름의 정이 느껴졌고, 술의 힘을 빌어서야 간신히 전화하는 망설임이 보였다.이 놈은 들어올 때부터 행색이 기괴하고(181cm의 키에 몸무게가 50kg이 안되었다. 이정연 사태 때문에 군대에 현역으로 오게 된 것이리라...불쌍...) 쾌활하지만 무개념 성격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군생활을 하면서 가끔씩 보이는 그 나름의 생각의 깊이는 나를 때때로 놀라게 하였다. 아무튼 모두 무사히 제대를 했고, 찌질한 예비역들이 되어서 아저씨들로 늙어가고 있는 듯 했다.
나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웬만한 남자들은 군대 시절은 돌이키기만 해도 몸서리치게 된다. 그러면서도 가끔씩 술이 들어갈 때 밤새울 수 있는 안주로 삼으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은, 그 폐쇄되었고 상실된 시간과 공간 역시 함께했던 것이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좋은 사람들도 안좋은 사람들도 있고, 20대 초중반의 젊고 어린 남자들이 나름의 사회를 구성해서 돌리며 병정놀이를 하는 가운데 일어나는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있기 때문에 가끔은 그 시절을 곱씹으면서 때론 미화하고 때론 희화하며 또 때론 덧칠하고 윤색하고 과장하면서 훗날의 즐거움으로 삼을 수 있게 된다. 다른 무엇이 깃들지 않은 '사람'간의 이야기는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 속에서 짙게 냄새를 풍기곤 한다.
좋은 의미에서 볼 때, 동기였던 충혁이를 제외하고 군생활을 통틀어 인상적인 사람을 딱 한 명만 꼽자면, 단연 부산 출신인 김만진 병장일 것이다. 아마 나뿐 아니라 그 당시 육군대학 본부근무대에서 군생활했던 사람들 중 많은 사람이 그를 좋은 고참으로 기억할 것이다. 그는 나와 동갑이었지만 일곱달 선임이었다. 내가 자대배치받은 이후부터 그가 제대하기까지 함께했던 15개월 동안 나는 한번도 그가 후임들에게 거친 소리를 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는 사격에 뛰어났고, 업무에서도 내무생활에서도 매사에 솔선하고 모범을 보였던 군인이었다. 그는 한여름 땡볕아래 무기고근무를 마치고 난 뒤 후번 근무자들인 후임병사들을 위해 자판기에서 냉음료를 뽑아서 다시 가져다 주었던 사람이다. 그는 내가 만난 잊을 수 없는 사람 다섯 명을 꼽으라면 항상 들어가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나에게 '성격 좋은 사람'이라고 말해주었던 사람이다. 그 이전에도, 또 그 이후에도 나는 두 번 다시 그 누구로부터도 그런 말을 듣지 못했다.
1월말이 되면 한수철과 김만진을 만나게 될 것 같다. 서로 지금 사는 세계가 다르고 또 할 말도 많을 거 같지 않지만, 그들이 보고 싶다. 안에 있을 때에 생각했던 것보다 녹록치않은 사회를 살아가면서 그보다 더 힘들었지만, 같은 것을 생각하며 지낼 수 있었던 군시절을 떠올려가며 즐겁지는 않지만 편한 공감대 안에 몸을 내맡길 수 있을 것 같다. 군입대 시기가 달랐고 그 안에서의 위치도 달랐던 우리는 이제 모두 똑같은 예비역 4년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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