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나오는곳
B모 과장님과의 대담
Redwall
2009. 1. 28. 03:35
정권의 X구멍을 핥으려는 회사의 움직임 일환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다고 했다. 해당자는 10년 이상 근속하고 정년을 1년 이상 남긴 직원들이다. 신이 내린 직장에서 퇴직자가 얼마나 될까라는 회의적인 시각과 달리, 벌써 신청자가 서른 명이 넘는다는 소식에 아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들은 적정 수준의 보상을 받게 되고 7월까지 조직원의 신분을 유지할 수 있긴 하다.
우리 팀에서는 두 명이 이번에 자진해서 나간다고 했다. B과장과 K과장. 둘 다 오래된 대리들이었다가, 이번에 조직개편으로 과장이라는 직함을 달게 된 사람들이다. 둘 다 토목직이고, 둘 다 재테크에 밝다. 그동안의 경력과 실력들을 가만히 보자면 이번에 목돈을 챙겨서 나가면 이를 기폭제삼아 크게 한방씩 터뜨릴만한 능력이 충분한 사람들이다.
B과장은 기술직 엘리트이다. 기술인협회에서 인정하는 특급기술자의 칭호를 가지고 있고(나는 꼬꼬마 초급기술자;;), 두 개의 기술사를 지니고 있으며 해당분야에서는 우리 회사에서 최고를 달리고 있다. 동시대 사람들에 비해 영어능력도 탁월하다. 그가 운영하는 블로그에는 우리나라에서 해당 업계에서 일하는 모든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서 자문을 구하곤 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천성적으로 자존심이 강하고 스스로를 내세우고 융화를 잘 모르며, 특히 상사와의 타협을 잘 이루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조직에서도 승진이 힘들어보였고 일견 실력갖춘 외곬수로 보이기도 하지만, 나름대로의 삶의 철학을 가지고 행동하는 모습에서는 일관성을 유지하는 사람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나를 꽤 좋아한다. 적어도 호감을 지니고 있어보인다. 같은 지식노동자로써 그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나로부터 발견하고, 인정까지는 아니지만 과분할 정도로 존중해주었다. 이러한 존중은 때로 용인술(用人術)의 한 방편으로 쓰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사실 그가 나를 그런 식으로 대할 이유도 없고, 또 실제로도 그런 의도는 없었다. 이 팀에 오고 초반에 활주로에서의 작은 사건 때문에 그와 나는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에 이어진 한 번의 술자리에서 풀어지게 되었고(그가 그 사건을 몇 달 동안이나 마음에 품고 있었다는 것은 놀랄만했다.), 업무상 특수한 분야에 대한 공통의 관심사 덕분에 많은 얘기를 때로는 피상적으로, 때로는 심도깊게 나누며 조금씩 벽을 낮추어가고 있었다. 그러한 모습을 자주 보여서인지 팀장님은 그와 나를 지난 달에 같은 근무조에 배치하였다.
아무튼 오늘 야간은 그의 이 회사에서의 마지막 근무날이다. 그는 말이 상당히 많다. 하나의 주제가 나오면 관련된 얘기를 입이 아프지도 않은지 몇십분 동안이라도 얘기할 수 있는 언변이 있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가끔 피곤할 때도 있다. 오늘도 초반에는 인터넷에서 찾는 정보도 있고 해서, 건성으로 듣다가 재테크에 대한 얘기가 시작되면서 집중하게 되었다. 그는 나에게 자신이 최근 가게된 재테크 카페를 소개해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재테크 경력을 얘기해주었다. 간간히 조각조각 듣곤 했던 얘기들이지만, 한줄로 좍 이어서 듣기는 처음이었다. 아주 흥미로웠고, 그동안의 실전 경험에서 묻어나오는 재미있는 얘기들이었다.
또한 이와는 달리 그동안 하지 않았던 몇 가지 인상적인 얘기도 기억에 남는다. 그 외에도 많은 얘기가 있었지만 다들 자기계발서나 다른 책에서 본 내용들이었다. 인상적인 얘기들을 대강 이해한 대로 정리해보면 이렇다.
- 이명박을 욕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명박이 선하고 바르며 훌륭한 대통령이기 때문이 아니다. 한반도에 우리 민족이 거주하기 시작한 이후로 역사상 정말 훌륭한 통치자로 꼽을 만한 사람을 얘기해보자면, 광개토대왕과 세종대왕 정도라 할 것이다. 약 5천년의 기간 동안 단 두 명이다. 이는 이천 오백년에 한 명씩 위대한 지도자가 등장한다는 의미로서, 이제 60년에 불과한 공화국 역사를 지닌 대한민국에서 모든 이에게 욕안먹는 훌륭한 지도자를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아니 이명박이 어떠한 지도자이든, 그를 욕할 시간에 자기계발에 투자하는 게 낫다.
- 부동산 투자시 대출을 두려워하지 마라.
대출은 사실 대출금을 갚는 부담 때문에 경험이 없는 사람으로서는 선뜻 나서기가 어렵다. 하지만 매달 은행에 돈을 가져다주고 이자가 생긴다는 점에서 대출은 적금과 다를 바가 없다. 목돈을 초반에 만지느냐, 나중에 만지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대출은 적금과 같다. 이자수익이 있긴 하지만, 돈을 원하는 바로 그 순간에 한 방에 터뜨릴 수 있다는 점은 적금의 그런 상대적 장점을 보완하고도 남는다.
- 돈은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쓰는 것도 중요하다.
많은 책에서 나오는 얘기이다. 개개인의 가치관에 따라서 그 정도가 다르겠지만, 돈은 결국 쓰기 위해서 버는 것이며 또한 적절하게 쓰는 돈은 나중에 돈을 버는 데에 있어서도 또다른 약으로 작용하게 된다. 적절하게 돈을 쓰는 것은 마음의 평화와 여유를 가져다주기도 하며 부담을 덜고 홀가분함을 느끼게 하고 파생되는 효용까지 누릴 수 있게 된다. 혹시 손해볼지도 모르지만 수업료를 치뤘다고 생각하고, 결국 그런 경험이 나중에 재산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지녀야 한다.
B과장이나 K과장이나 팀에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잘 지냈던 선배 직원들이다. 며칠 전 회식자리에서 K과장을 앞에 두고서 몇번씩이나 반복하며 했던 얘기지만 팀에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항상 나를 떠난다. Y과장도 K대리도, 그리고 얼마전 조직개편에서 팀을 떠난 K차장,Y차장과 사원급 직원들도 그렇고 지금 마음을 트고 지낸다고 생각했던 두 과장들도 떠난다. 비록 표현을 하지는 않지만 떠난 자들의 아쉬움 이상으로 남겨진 자들의 아쉬움도 크다. 다만 그들이 남긴 말과 행동을, 혹은 자양분삼아 혹은 반면교사삼아,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고 그 힘의 원천이 되었던 그들을 기억하는 것이 남겨진 자들의 몫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