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학부수업을 들어보면, 이른바 '철학적 사고'를 세팅하기 위해 교수님이 이런 화두를 던진다. 여러분 '사랑'은 존재합니까? 사랑이 어디 있죠? 만질 수 있습니까? 느껴집니까? 여러분 머리 위 30Cm쯤에 둥둥 떠다니나요?
그렇다 사랑은 비물질적이다. 이 사랑이란 것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사랑이란 호르몬의 분비와 뇌의 복잡한 작용에 의해 생성되는 일련의 감정을 멋대로 줄여 말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랑은 그런 물질성을 벗어나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존재한다고 해 보자. 이때 사랑은 물질성을 완전히 벗어났고 인간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므로 하나의 관념이 된다.
이제 다음 질문이 이어진다. 여러분 대한민국은 실재합니까?
국토는 물질로 존재하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실재하는 걸까. 아니다. 삼천리 금수강산은 대한민국이 소유한 공적 부동산일 뿐이다.
삼천리 금수강산이 참 아름답긴 하다만
국경선은 실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여기까지가 우리 땅이다'라고 하는 두 나라 사이의 약속일 뿐이다. 약속. 여기에 국가의 본질이 있다.
캐나다와 미국의 국경선에 원래부터 살던 영토가 갈리게 된 한 인디언부족의 추장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캐나다인도 미국인도 아니다. 나는 캐나다인으로도, 미국인으로도 살기로 한 적이 없다. 국경선이 어디에 있는가? 여러분들의 머릿속에만 있다. 캐나다가 어디에 있는가? 자신이 캐나다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한테만 존재한다. 캐나다와 캐나다의 국경선은, 그 존재를 '인정'한 사람들에게만 있을 수 있다.
국가란 그 국가에 살기로 한 사람들의 의식이 모여 존재하는 것이자, 그 구성원들간의 약속이다. 약속은 물질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당사자간의 의식이다.
국가는 관념이다. 따라서 국가의 존립기반은 필연적으로 이중적이다.
국가는 전쟁이 나서 국민의 반이 죽는다고 해서 없어지지 않는다. 가난한 나라가 될 순 있지만 나라의 존재가 흐려지진 않는다. 국토의 일부를 읽거나 반대로 얻는다고 해도 국가는 여전하다. 국토는 책의 종이와 잉크처럼, 국가라는 관념을 담는 도구에 불과하다. 대한민국이 상해임시정부의 적통을 이어받을 수 있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국가는 생각보다 견고한 조직체다. 중앙청사는 행정부의 동의어가 아니다. 행정, 입법, 사법은 천막에서도 노천에서도 할 수 있다.
국가는 약속, 혹은 '국민 개개인의, 약속한 사항들에 대한 의식'이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약한 모래성이다.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순간 국가의 존립기반은 흔들린다. 이명박은 국격을 논했다. 그가 저지른 이건희 사면은 국가의 격을 위협하는 테러였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탈세를 하면 감옥에 가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먹을 게 없어 동네 구멍가게에서 몇 만원을 훔친 도둑이 불쌍해도 용서받을 수 없는 이유는 그렇게 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군대에 가기 싫어도 가는 이유는 국방의 의무를 지도록 약속했기 때문이다.
약속은 국가의 본질이다.
검찰의 권력은 어디에 있는가. 검사들의 근력에 있는가? 그 권력은 전국 천칠백명 검사가 총칼을 들고 국토의 일부를 장악해서 생겼는가? 아니면 금전과 노동 등 그에 상응하는 실질적 대가를 치르고 얻었는가? 검찰의 권력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천칠백명의 피와 살은, 국가 전체로 보면 한줌의 연약한 물질에 불과하다.
검찰의 권력은 국민들의 머릿속에 존재한다. 그들의 권력은 약속된 사항이다. 국민들은 함께 살아가기 위해 수많은 약속을 만들어냈다. 반드시 지켜져야 할 약속들을 모아 법이라 불렀다. 모든 약속에 해당되는 대원칙을 헌법이라 부른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법을 두려워해야겠기에 우리 중 일부에게 법을 강요하고 집행할 직책을 주었다. 경찰, 판사 그리고 검사.
아무나 뽑을 수는 없기에 자격시험을 본다. 시험비용을 국민이 댄다. 교육비용도 국민이 댄다. 먹고 사는 데 지장 없으라고 역시 세금으로 생계를 부양해준다. 경찰력 등의 인력과 비용 등 권력을 행사하는데 필요한 일체의 것들도 모두 국민이 부담한다. 그리고는 그들을 두려워한다. 국가라는 약속이 지켜지게 하기 위해서.
PD수첩 피디들이 무죄판결을 받자 전국 검사들이 총회의를 했다. 굵직한 시국사건에 대한 법원의 잇따른 무죄판결에 화가 났기 때문이다. 왜 화가 났을까. 자신들의 권력이 무시되고 흔들리는 데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나라를 뒤흔든 큰 사태의 계기가 된 중요사건에 대해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 나와 안타깝게 생각한다."
김준규 검찰총장이 법원을 비난하고 나섰다. 오늘은 전국 검사들과 화상회의를 하며 단결을 주문하고 나섰다. "우공이산". "인천상륙작전". 힘들더라도 하나의 목표를 위해 다함께 전진해나아가자.
뭉쳐!
그런데 그 하나의 목표가 분명하지 않다. 당연하다. 똑바로 말하기 민망했을 거다. 법원의 판결이 마음에 안 들었다고 전국 검사인력을 회의에 단박에 소집해버리는 일은, 의심의 여지없이 세 과시다. 그 회의에서 단결을 주문했다. 뚫린 입이라고 이따위 말까지 했다.
"올해 기운이 검찰 쪽에 있다."
따라서 내 머리로 그 하나의 목표란, 곧 검찰지상주의라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물리적으로는 사병 일개중대만 있으면 소탕할 수 있는 당신들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렇게 하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당신들의 권한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이유는 당신들 역시 약속을 지킬 것이라 전제하기 때문이다.
이번 법정공방에서 그 약속을, 당신들은 제대로 안 지켰다고 난 믿지만, 그래 지켰다고 하자. 하지만 PD들을 법정에 세우는 것까지가 당신들 일이다. 법원의 판결에 아무리 짜증이 나도 이의를 제기해선 안 된다. 그렇게 하기로 약속되어 있으니까. 우리는 당신들이 똘똘 뭉쳐 당신들만의 목표를 쟁취하라고 권력을 주지 않았다. 그건 옷 벗고 해라. 무슨 파 하나 만들어서 조폭들이랑 맞짱을 떠보던가, 아프리카 가서 AK소총 들고 설치던가.
국가와 마찬가지로 검찰 역시 정신세계에 존재한다. 그 모래들을 간신히 붙잡고 있는 알량한 물기는 당신들 생각과는 달리 쉽게 날아가버릴 수 있다. 국민이 당신들의 존재이유에 회의를 느끼는 그 순간이, 당신들에게 아무런 권력도 남아있지 않을 때다. 당신들이 그토록 집착하는 권력이.
그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거니까.
아...
딴지일보에서 손 놓은지 한 8~9년만에 요즘 다시 딴지를 열독하고 있다.
딴지를 외면하고도 살 수 있는 세상을 바랬었는데...ㅠ_ㅠ 아무튼 덕분에 딴지는 이번 정권에 감사해야 할 거다.
그들의 모토 => 똥꼬 깊숙히~!!!
진짜 얘네들이 웬만한 메이져 언론(조중동이라고 쓰고 찌라시라고 읽는다.)보다 훨씬 낫다는 느낌은 요즘들어 더 '세게' 느껴지고 있다.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