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회 잉글랜드 월드컵 [1966]
(자료제공 : http://www.worldcup.co.kr)
[8th England-1966] | ||||||||||||||||||
[Summary] '축구의 종가' 잉글랜드에서 벌어진 월드컵은 각종 화제가 만발했다. 우승컵이 대회 전에 사라졌다가 발견되기도 했으며, 아시아 지역 대표인 북한이 이탈리아를 꺾으며 8강에 진출하였으나 8강전인 포루투칼과의 경기에서 전반 20분까지 3-0으로 앞서다가 에우제비오가 4골을 넣으며 맹활약한 포루투칼에게 3-5로 역전패를 당했다. '축구황제' 펠레는 거친 수비수들에게 많은 반칙을 당한 나머지 브라질이 1라운드 탈락을 하자 "다시는 월드컵에 출전하지 않겠다"고 인터뷰 하는 등 많은 화제거리가 있었다. 보비 찰튼, 잭키 찰튼 형제와 보비 무어 등을 앞세운 잉글랜드가 연장까지 가는 격전 끝에 서독을 4-2로 누르며 우승했다. 결승전에서 허스트는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현재까지도 '월드컵 결승전 해트트릭'을 기록한 유일한 선수로 남아 있다. [Stars] Sir Bobby Charton CBE(잉글랜드)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우승의 주역이다. 15세의 나이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매트 버스비 감독의 눈에 띄어 입단하여 일찌감치 엘리트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1958년 월드컵을 앞두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팀이 유럽 컵 예선을 위해 베오그라드에 가다가 뮌헨에서 비행기 사고를 당한 '뮌헨의 비극'때 기적적으로 살아남았고, 이후 잉글랜드의 대표팀을 짊어지게 된다. 본래는 공격수였으나 잉글랜드 감독 알프 램지에 의해 '플레이메이커'의 역할을 맡아 맹활약을 보이면서 이전까지 공격과 수비만으로 나누어진 축구상식을 뒤바꿔놓은 '미드필드 장악'을 보여준 선수였다. 이후 잉글랜드 대표로 106경기에 출장 49골을 기록해 1990년대에 게리 리네커가 그 기록을 깨기 전까지 잉글랜드 대표팀의 개인 통산 최다골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클럽경기에서는 600경기를 출장 300골을 기록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설로 남아 있으며 CBE작위를 받았다.
원래는 모잠비크에서 태어났지만 포루투칼로 귀화한 선수로 모로코 출신인 쥐스트 퐁텐에 이어 아프리카의 힘을 세계무대에 과시한 선수였다. 1962년 벤피카가 레알 마드리드를 꺾으며 유럽컵을 거머쥐는데 맹활약을 했으며 1965년 유럽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고 포루투칼을 월드컵 본선에 올려놓고 3위를 일궈냈다. 8강전이었던 북한과의 경기에서 경기초반 0-3으로 뒤졌으나 4골을 혼자서 연속으로 몰아치며 5-3의 대역전극을 연출한 것은 유명하다. 또한 1966년 월드컵에서 그는 9골을 기록하며 월드컵 득점왕의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식민지 출신으로 벤피카와의 장기 계약으로 인해 선수로서 많은 돈은 벌지 못했고 1975년 미국이 프로축구리그를 창설하면서 보스턴 티 맨 팀으로 옮긴 뒤 1년뒤 멕시코의 FC Monterey 팀으로 옮긴 뒤 은퇴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