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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wall
2009. 4. 19. 12:30
파독광부들의 쓸쓸한 고국나들이
박상주 (칼럼니스트·참미디어연구소장)
“광원 여러분, 간호사 여러분, 가족이나 고향 생각에 괴로움이 많을 줄 알지만 …. 비록 우리 생전에는 이룩하지 못하더라도 후손을 위하여 번영의 터전만이라도 ….”
박정희 대통령은 연설을 마무리짓지 못했다. 이 구석 저 구석에서 흐느낌이 번졌고, 박 대통령 자신도 울어버렸다. 1964년 12월 10일 서독 루르탄광지역에서 있었던 일이다.
1963년 12월 22일 새벽 5시, 서독광부 1진 123명이 독일 뒤셀도르프 공항에 첫 발을 디뎠다. 이후 1977년 10월 26일까지 총 7936명이 독일 땅을 밟았다. 이들 파독광부들은 함께 파견된 간호사들과 더불어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종자돈을 마련한 분들이었다.
지난주 파독광부 7936명 가운데 한분이었던 성규환 재독한인글뤽아우프회 회장을 만났다. 일선 기자시절 광부·간호사 이야기를 취재하면서 인연을 맺은 이후 고국 나들이를 할 때마다 잊지 않고 연락을 주시는 분이었다. 독일 출장 때 뵈었던 유상근 선생님도 함께 자리를 하셨다. 성 회장님이 불쑥 책을 한권 건네 주셨다.
‘파독광부 45년사.’
550여 쪽에 달하는 두툼한 책이었다. 자신들의 45년 발자취를 스스로 기록한 ‘서독광부들의 자서전’이었다.
사우나처럼 줄줄 땀이 흐르는 막장에서 하루 열번 정도는 장화로 흘러든 땀을 쏟아내며 일했고, 한달에 2~3일만 쉬면서 번 돈의 80~90%를 고국으로 송금했고, 서양인들의 큰 체형에 맞춰 제작된 착암기를 힘겹게 부여잡고 탄가루를 마셨던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60년대 경제발전 종자돈 마련
70줄의 노인들이 손수 자료를 조사하러 뛰어다니고, 침침한 눈을 비비며 원고를 쓰고, 동료들에게 원고를 청탁하고, 인쇄비용을 줄이기 위해 멀리 고국까지 와서 책을 찍어냈다고 했다.
순간 코끝이 찡해졌다. 성 회장님을 비롯한 파독광부들이 자신들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얼마나 눈물겨운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70줄에 들어선 파독광부들은 하나 둘 옛 동료들이 세상을 떠나는 것을 바라보면서 부쩍 허전함을 느낀다고 했다. 고국의 후세들에게 파독광부의 존재와 교훈을 전할 만한 기념비적인 뭔가를 남기는 것이 파독광부들의 염원이었다.
건네받은 책을 조심스럽게 넘기기 시작했다. 페이지마다 그들의 눈물겨운 기록들로 가득 차 있었다. 파독광부들이 겪었던 절절한 사연과 각종 기록을 담은 문헌, 생생한 자료사진들 ….
한장 두장 책장을 넘기면서 슬그머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사진 인쇄 상태나 편집 등이 너무 조악했다. 국가를 위해 평생 피땀을 흘린 파독광부들의 역사가 이렇게 초라하고 값싼 책자 속에 담겨도 되는 것인가.
출판 기념회는 언제 하느냐고 물었다. 성 회장님은 “출판 기념회를 할 돈도 없고, 설사 기념회를 한다 하더라도 고국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기나 하겠느냐”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서 갑자기 생각이라도 난 듯 성 회장님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런데 우리나라 노동부 장관님은 왜 그렇게 뵙기가 힘들어요? 이번에 한국에 나오면서 미지급 적립금 사용과 책 출간 등 파독광부들의 문제로 상의드릴 게 많았어요. 그래서 면담을 여러번 신청했는데 가타부타 말이 없어요.
19일 열리는 모국방문 행사
독일을 떠나기 전, 노동부 담당자에게 두번이나 국제전화를 걸어 장관 면담을 신청했고, 한국에 들어와서 또 두 차례나 전화를 드렸습니다. 나라 일을 보시는 장관이 바빠서 못 만나 줄 수도 있지요. 그러면 그렇다고 그런 사정을 설명해주는 게 상식적인 절차고 예의 아닙니까? 그냥 깔아뭉개면 그만인가요?”
우리 경제 발전의 태동기에 눈물 젖은 외화를 벌어주었던 파독광부들. 절반 이상이 아직도 한국 국적으로 살면서, 언제라도 가볍게 고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독일 집의 가구도 장만하지 않고 산다는 그 어른들. 고국이 너무 그들을 괄시하고 무시하는 건 아닐까.
19일 롯데월드에서 파독광부 130명의 모국방문 행사가 열린다. 그들만의 잔치가 되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파독광부 45년사’ 출판도 축하할 겸 많은 분들이 참석해서 그분들을 꼭 껴안아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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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년 파독(派獨) 광부 500명 모집에 4만6000명이 몰려들었다.
얼마 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파독광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말조차 제대로 통하지 않는 이역만리에서 광부들은 독일 국민이 감탄할 정도로 성실하게 일했고, 그렇게 번 돈을 대부분 국내 가족에게 송금한 것으로 확인됐다.
속임수와 외면이 상식이 되어버린 나라.
현대사에서 빠질 수 없는 역할을 한 그들.
낯선 타지에서 광맥을 캐는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동백림 사건을 비롯해여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지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난다.
하지만 그들에게 국가와 국민은 그 '아직 먹고살기 힘들어서'라는 경제논리를 아직도 얘기하며 외면한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우리에게 아직도 애국심과 민족의식을 가르치며 강요하고 있다.
4.19를 맞아 접하게 된 우울한 상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