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보기

예비군 동원훈련

Redwall 2008. 7. 17. 01:10

-  동원훈련이라는 걸 다녀왔다. 예비군 3년차. 벌써 그 시절이 3년이라는 시간의 간극만큼 뒤로 밀렸다는 것을 실감하였다. 나는 복무신조를 읊어대지 못하였고, 처음에 고무링 차는 법도 잊었었다. 바람직한 결과이지만 나의 삶과 결코 무관하지만은 않은 일이다.

-  학교예비군에서의 이년과는 달리 동원의 이박삼일은 비록 삼년이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예전 군대생활을 더욱 생경하게 떠오르게 만들었다. 군대 특유의 그 냄새와 전형적인 비효율성, 그리고 목적의식없이 표류하는 모든 일정은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거기 모였던 사람들. 군대라는 집단에 몸담아보지 않고서는 얼굴조차 마주칠 수 없는 사람들과 가까이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경험은 스스로를 반성하고 공부하게 만든다. 그 와중에서도 모든 이들은 '연기'를 하고 있었으며, 과거에 이 년 남짓한 시간 동안에 길디긴 대하드라마속의 한 출연자로써 행했던 연기를 다른 스탭들과 함께 재생산해내고 있었다. 물론 나도 예외없이 본편에서 살짝 변주된 외전 형식인 예비군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해내었던 것 같다.

- 흔히 군복만 입으면 변한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그 세계 안에서 남들의 변하는 모습을 보며 또한번 집단화하는 변화를 겪게 된다. 아직 젊은 수컷들이 모여있는 공간에서 우스울 정도의 진풍경이 벌어지곤 한다. 그것은 어떤 괄목할 만한 사건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각자의 말 한마디 태도 하나에서 이미 드러난다. 하지만 그 모든 것 역시 군대라는 병정놀이 내부에서나 유효한 것일 뿐, 끝나면 모두 허망해지는 것이다.

- 수형이와 홍환이와 함께 동원을 다녀왔다. 둘 모두 별로 친하지 않았던 회사동기들이다. 이박 삼일간 같이 지냈고 나중에 동기모임이라도 있으면 이 때의 작은 기억을 안주삼아 조금 얘기할 거리라도 생기겠지만, 그뿐이다. 물론 겉으로는 많이 친해진 것처럼 연기하면서 지내겠지만 말이다. 스물 두살 때인가 어떤 시험에 대한 어떤 정보를 알고 있던 대학 동기 한명을 두고 다른 친구가 "아 그러면 걔랑 친해져야겠네.."라고 말한 것을 들은 이후로 나는 사람들 사이에 소위 '친함'이라는 것에 의심을 품었다. 몇십번의 술자리를 같이 하고 몇천 마디의 대화를 나눈다 해도 말이다. 게다가 이상하게 나이가 들수록 인간관계의 지평을 넓히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줄어든다. 세상은 한 사람을 제대로 알기가 어렵도록 이끌어가고 있고, 그런 와중에 계속적으로 밀려오는 인간관계는 피로만을 양산해낸다.

- 바로 옆에서 생활하던, 건축자재 취급하는 개인사업을 하던 스물 일곱살 짜리에게 공기업에 다니는 서른살 짜리 나는 어떻게 비추어졌을까.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라는 예비군 삼년차와 사년차를 가르는 그 실없는 농담보다 더 큰 소통부재의 원인은 그런 것에 있었다. 슬프지만 사람을 가르고 나누는 기준의 잣대로부터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그 농담스럽고 밉살스럽지만 웃음과 함께 말했던 '넘사벽'보다도 '공기업이라... 완전 여자가 줄을 서겠네요. 신의 직장이고...' 이후에 오던 침묵은 더욱 시끄럽게 귀를 때렸다. 웬지 모르게 죄를 지은 것같은 기분이 든 것도, 그 앞에서 바깥 사회의 일을 꺼내고 싶어했던 우스운 욕망도, 모두 비애이다.

- 아무튼 많은 잠을 자고 생각은 조금 했지만, 동원을 가기 전과 다녀온 후에는 변화가 생겼다. 마치 2005년의 그 여름의 축소판이라고 해야 할까. 눈에 띄지는 않지만 나의 영혼에 조그만 균열을 가하기에 충분했던 이박삼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