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4에 등장하는 역사상 위인들
문명 4는 시드 마이어라는 개발자에 의해 제작된 게임으로 전세계적으로 수많은 매니아를 가지고 있는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게임 제목 그대로 인류의 문명발전 그 자체를 소재로 하였으며 게이머는 많은 문명들 중 하나를 택해 정해져 있는 조건의 승리를 이루기 위해 자신의 문명을 다각적으로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각각의 문명은 실제에 근접하게 설정되어 있으며 역사와 기술의 발달 역시 인류의 역사시대에 대한 충분한 고찰과 연구를 통해서 구성되었다. 게임을 하면 할수록, 문명 발전의 오묘함을 게임상에 잘 구현해내고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면서 시드 마이어라는 사람의 위대함을 알 수가 있다.
위대한 상인 중 한명인 존 스튜어트 밀(J.S. Mill)
게임의 구성요소들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복잡하고 상호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그 중에서도 어떤 문명이 일정 수준의 문화나 과학수준, 세기의 불가사의 등을 이룩하면 위인이 등장한다는 개념이 있다. 이들은 위대한 종교지도자, 철학자, 과학자, 예술가, 장군, 상인 등 각 직업군별로 특화되어 있으며 따라서 직업별로 고유능력도 다르다. 일정 숫자의 위인이 모이면 이른바 르네상스 등과 같은 문명의 황금시대를 이루어 문명발전을 가속할 수도 있다. 여기서는 문명4 게임에 등장하는 위인들을 정리한 자료가 있기에 소개한다. 인류 역사를 가로질러온 위인들의 눈부신 이름들을 보며 문명의 가슴벅찬 신비와 위대함을 아울러 느낄 수 있게 된다.
사르곤 2세: 앗시리아의 사르곤(앗시리아어로 샤루-킨,히브리어로는 사르곤)왕조의 시조이며 아버지는 티클라스필레테스3세. 세계최초의 제국인 앗시리아제국을 세웠으며 재위기간동안 티클라스필레데스3세의 영토를 회복시켰으며 바빌론의 왕 메로다크발라단 2세의 외교전략으로 인한 주변국들의 공격을 모두 물리쳤고 영토를 늘려나갔습니다. 그의 뒤를 이어 센나케리브,에사르하돈,아슈르바니팔같은 강력한 왕들이 연이서 등장하며 앗시리아는 당대 최강 제국으로 발돋움하였고 그런 앗시리아를 받치던 기병과 전차부대는 고대 최강의 군대였죠.
네부카드네자르 2세: 신(新)바빌로니아의 2대왕으로 이집트를 물리치고 유다를 멸망시켰으며 팔레스타인까지 진출하였고 바벨탑을 쌓고 왕비 아미티스를 위해 마르두크 신전과 공중정원을 지었습니다. 또한 성서에도 나오는 예언자 예레미야와 에젤키엘은 그를 신의 대행자로 봤으니 당시 얼마나 강력한 왕이였는지 상상이 되실겁니다.
손자: 손자병법 이것 하나로 모든게 설명이 되는 전세계적베스트셀러작가이자 희대의 군사전략가.
레오디나스: 스파르타의 왕으로 테르모필레 협곡에서 용맹함으로 유명한 스파르탄홉라이트를 이끌고 3일동안 페르시아의 대군과 맞서싸워 모두 전사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막아낸 3일은 아테네의 데미스토클레스에게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고 결국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함대의 침몰을 가져오게됩니다.(영화 300에서도 나옵니다)
리샌더: 스파르타의 지도자.(자료부족)개인적으로는 스파르타의 리산드로스제독을 말하는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프톨레미 소테르: 알렉산더의 부장으로 이집트의 총독으로 있다가 알렉산더가 죽자 그의 시신을 알렉산드리아에 묻고 프톨레미(프톨레마이오스)왕조를 세웁니다. 프톨레미왕조는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였으며 300년을 유지하였지만 결국 클레오파트라의 아들 프톨레마이오스15세대에 이르러 막을 내립니다.(소테르는 그리스어로 구원자란 뜻입니다)
챤드라굽타 마우리아: 인도최초의 제국인 마우리아 왕조의 시조로서 플루타르크영웅전에서는 알렉산더와 맞서 싸운 장군으로 나옵니다. 알렉산더가 돌아간 후 약해진 난다왕조를 멸망시키고 마우리아왕조를 세웁니다. 그리고 그의 손자대인 아소카 왕에 이르러서 최고의 전성기를 구사하게됩니다.
하밀카르 바르카: 카르타고의 장군으로 1차포에니전쟁에도 참전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에스파냐를 카르타고의 속령으로 삼고 자신의 일족의 세력기반으로 키웠습니다. 그리하여 로마를 공포에 떨께 했던 희대의 명장 한니발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됩니다.
가이우스 마리우스: 로마의 집정관을 7차례나 지냈으며 시민군을 직업군으로 바꾸는 군제개혁을 단행하여 로마의 군사력을 한단계 끌어올려놓습니다. 하지만 운이 따르지 않았는지 술라가 동방에서 돌아오기 전에 병사합니다. 술라와 마리우스가 싸웠다면 역사가 어떻게 흘려갔을지....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자마회전에서 한니발을 물리치며 아프리카누스라는 칭호를 얻은 로마의 장군입니다. 자마회전에 관해서는 여러 말이 많지만 한니발에게서 승리를 얻어냈다는 그것 하나만으로도 명장의 반열에 오르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됩니다.
베르긴게토릭스: 갈리아족의 족장으로 알레시아 공방전에서 카이사르를 최대의 위기까지 몰고갔으나 결국 카이사르의 천재적인 군사전략에 무릎을 꿇게됩니다. 패배 후 로마로 끌려와 구경거리로 전락했으며 처형당하게됩니다. 시오노 나나미의 책에는 베르긴게토릭스에 대한 평가가 호의적이진않지만 제 생각에는 베르긴게토릭스는 갈리아족을 위해 싸운 긍지높은 전사였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겁니다.(프랑스에서는 그를 영웅으로 생각하고 동상도 세웠습니다)
아르미니우스: 게르만족의 족장으로 로마에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토이토부르크 전투에서 로마군을 전멸시켰으며 당시 최고의 역사가로 꼽히는 타키투스조차 '아르미니우스는 다른 왕이나 지도자와는 달리 로마의 힘이 절정이던 시기에 투쟁을 벌였다. 그는 전투에서 결정적인 승리는 거두지 못했어도 결코 패배하지 않았다'라고 평할 정도로 뛰어난 전략가였습니다. 비록 훗날 같은 동족에게 암살당하게되지만 아르미니우스로 인해 로마제국은 더 이상 라인강 동쪽으로 올라가는 것을 포기하게 됩니다.
부디카: 브리튼의 이케니아족의 여왕으로 "보아디케아"라고도 부릅니다. 이케니아족은 로마제국과 호의적인 관계였으며 프라수타쿠스에 의해 잘 다스려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인 프라수타구스가 죽은 후 로마제국은 이케니아족에게 치욕을 주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왕국과 왕실은 다같이 전리품처럼 약탈당했다. 이를 성취하는 첫번째 단계는 보아디케아를 그녀 자신의 집안에서 그녀의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혹독한 채찍질을 가하여 굴욕감을 주는 것이었다. 두 딸에게는 잔인한 강간이 곧 뒤를 이었다." 라고 남아있습니다. 이로 인해 이케니아족은 로마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으며 카물로두눔(콜체스터) 론디니움(런던)등을 초토화시켰습니다. 하지만 만두에숨(맨체스터)에서 결국 로마군에 의해 전멸당하고 부디카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전해집니다.
조조&제갈공명: 삼국지. 여기에 다 나와있으므로 넘어가겠습니다.
벨리사리우스: 비잔틴제국의 명장으로 동으로는 페르시아의 사산왕조, 서로는 동고트왕국, 남으로 반달왕국과의 전쟁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그의 인기를 두려워한 유스티니아누스1세로 인해 결국 사령관직을 박탈당하게 됩니다. 전설에 의하면 황제는 그를 장님으로 만들었고 길거리에서 구걸하다가 죽었다고 합니다.(물론 역사적사실과는 다릅니다)그가 이끌었던 중장기병은 훗날 유명한 카탁프락터로 발전하게됩니다.
칼리드 이븐 알 왈리드: 처음에는 메카에서 마호메트를 물리치는 장군으로 나오지만 나중에는 그에게 감화되어 이슬람 최고의 장군이 됩니다. 마호메트의 뒤를 이은 초대칼리프 아부 바르크를 모시며 자신의 기병대를 이끌며 야무르크협곡 전투에서 명장 헤라클리우스의 비잔틴군을 대파하며 아라비아반도의 통일에 큰 공을 세웁니다. 훗날 그에게는 이슬람의 검이라는 영광된 칭호가 붙게됩니다.
샤를 마르텔: 피핀2세의 서자이자 메로빙거왕조의 궁재(궁정최고직)로서 에스파냐에서 올라오는 이슬람군을 격파한 명장입니다. 그가 이슬람군을 막아냄으로 인해서유럽의 가톨릭이 보존이 될 수가 있었으며 유럽에서 처음으로 등자를 도입한 기병대를 운용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닦아놓은 기반을 바탕으로 아들인 피핀이 메로빙거왕조를 멸망시키고 카롤링거왕조를 세웠으며 손자대에 이르러 전 유럽에 이름을 떨치게됩니다.
샤를마뉴 대제: 카롤링거왕조의 프랑크왕국의 2대왕으로 샤를 마르텔의 손자입니다. 이슬람의 침공을 막아내고 전 서유럽을 정복하여 정치적,종교적인 통일을 이루어내 황제의 칭호를 부여받습니다. 당시 백성들이 "유럽의 암흑기에 한줄기 빛" 시인들은"유럽의 아버지 왕"이라고 칭송할 정도였습니다.그러나 그가 너무나 뛰어나서인지 후계자가 무능해서인지 다음 대에 제국의 영광은 더이상 빛날 수가 없었습니다.(롤랑의 노래로 유명한 12기사가 모두 그의 기사입니다)
자야바르만 2세: 캄보디아의 앙코르왕조를 세웠으며 신왕숭배를 도입하여 왕권을 강화시켰습니다. 그가 세운 앙코르왕조는 6세기 정도 지속되다가 멸망했습니다.
엘시드: 본명은 로드리고 다비즈비아로 에스파냐의 명장입니다. 인격은 고결하고 소박했으며 명검 "티조나"의 주인으로도 유명한 그는 카스티야와 무슬림들과의 싸움에서 활약했지만 그를 질투한 왕에 의해 몇 번이나 국외로 추방당했습니다. 결국에는 그가 싸운 마지막 전투에서 생명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도 군대의 사기가 떨어질 것을 염려해 말에 몸을 묶고 전장을 누비다가 전사합니다.(엘시드는 빛나는 승리자란 스페인어입니다)
정복자 윌리엄: 노르망디공작으로서 백년전쟁의 시초를 제공하였으며 헤이스팅스전투에서 앵글로색슨족의 헤럴드국왕을 물리치고 승기를 잡아 잉글랜드를 정복한 왕입니다. 그가 높게 평가받는 이유는 잉글랜드를 정복한 마지막 외국군대이기때문입니다. 훗날 나폴레옹과 히틀러가 도전했지만 모두 성공하지못했던 것으로 봐서 유럽본토에서 영국을 점령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겠죠?
수부타이: 징키스칸의 4선봉 중 최고의 명장으로 전 유라시아대륙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장군입니다. 금나라,이란,카프카스,남러시아를 정벌하였으며 러시아,폴란드,보헤미아,신성로마제국,헝가리군대를 모조리 격파하였으며 단 한번도 패배하지않았다고 합니다. 특히 수부타이가 이끄는 만구다이부대는 바투의 황금부대와 함께 13세기 최강의 군대로서 무적이라해도 부족함이 없다고 봅니다.
티무르: 티무르제국의 시조로 중앙아시아를 공포로 몰아넣었으며 오스만투르크의 바야지트1세를 앙카라전투에서 격파하고 포로로 잡아 중앙아시아의 패권을 완전히 손에 넣습니다. 하지만 명으로 정벌을 가던 중 안타깝게도 병사합니다. 만약 그가 당시 명의 영락제와 붙었다면 세계역사가 바뀌었을지도 모르죠.(티무르는 전장에서는 잔인하고 냉혹했지만 정복지의 학자와 문인을 보호하였으며 산업을 장려한 뛰어난 인물입니다)
잔 다르크: 프랑스의 구국영웅이자 백년전쟁을 마무리지은 소녀. 그녀의 전략전인 면에서는 명장이라 불리기에는 다소 이의가 있을지모르지만 첫 전투인 오를레앙전투에서의 승리가 역사를 바꿨다는 점에서는 이의가 없을것입니다. 그러나 애국심과 신앙심으로 똘똘 뭉친 가련한 소녀는 정치적,종교적이유로 이용당하고 마녀로 몰려 루앙에서 화형당하게됩니다.(다르크는 그녀가 받은 성(性)입니다)
파차쿠티 잉카 유판키: 잉카제국의 황제로서 남아메리카의 북부와 중부지역을 정복하였습니다. 특히 잉카왕도라 불리는 도로를 각지에 건설하여 제국의 기반을 닦았습니다. 그렇지만 후손인 아타우알파의 대에 이르러 에르난 코르테스에 의해 멸망하게 됩니다.(잉카는 당시 지배계급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에르난 코르테스&프란시스코 피자로: 스페인의 정복자로 에르난 코르테스는 대장,프란시스코 피자로는 부장이었으며 각각 아즈텍과 잉카를 멸망시킵니다.(개인적으로는 문명4에서 왜 명장으로 뽑았는지 이해가 가지않습니다. 문화말살자라 칭해야하는데 ㅡㅡ)
폭군이반: 러시아을 통일한 최초의 짜르(황제)로 이반4세가 올바른 명칭이지만 제위기간 보여준 보얄(귀족)에 대한 잔혹한 숙청과 아들을 살해한 광기.그리고 공포정치로 인하여 역사가들이 폭군이반이라 이름을 붙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그의 상황은 왕권이 귀족들에 의해 위협받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감안해볼때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어쨌든 그가 닦아놓은 강력한 왕권은 그의 외조카인 표트르 대제에 이르러 빛을 발하고 러시아를 유럽의 강대국의 반열에 올려놓는 기반이 됩니다.(폭군이반이라는 영화도 있으니까 시간이 되면 한번 보시는것도...)
아크바르 황제: 인도무굴제국 제3대황제로서 덴카지방을 제외한 전 인도를 통일한 인물입니다. 강력한 왕권을 세웠으며 이슬람과 흰두교의 융합을 이루어내 재정적으로도 뛰어난 업적을 이루어냈습니다. 그러나 후대에 이르러 19세기 최강의 대영제국에 의해 멸망하게됩니다.(무굴제국은 이슬람왕국입니다)
구스타브2세 아돌푸스: 러시아를 발트해동쪽으로 미뤄내고 폴란드를 압박하면서 스웨덴을 강국으로 끌어올린 스웨덴의 국왕입니다. 특히 상비군을 창안,역사상 최초로 국군을 만들었으며 그의 머스킷소총부대와 야포부대가 30년전쟁에 등장하면서 15세기 최강의 군대로 이름을 날리게 됩니다. 하지만 발렌슈타인과 치른 뤼젠전투에서 아깝게 전사하고맙니다.(그러나 더 무서운 것은 두명의 명장 구스타브와 발렌슈타인을 뒤에서 조종한 프랑스의 리슐리외 추기경이라고 생각됩니다)
M.A.드 로이테르: 네덜란드의 해군제독으로 하류층에서 최고군인으로 올라간 입지전적인 인물로 반항적이면서도 위험한 전투에서 물러서지않는 용감함으로 부하들에게 존경받았습니다. 네덜란드가 자랑하는 또 한명의 해군제독 트럼프의 밑에 있었으며 그가 전사하자 해군중장의 자리를 이어받습니다. 영국-네덜란드전쟁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으며 템즈강을 통해 런던을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영국-프랑스의 연합군에 맞서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승전을 거듭하였으나 프랑스함대의 포탄에 다리를 맞고 전사했습니다.
올리버 크롬웰: 청교도혁명에서 의회군을 이끈 명장이었으며 조국을 위해 헌신한 뛰어난 정치가이기도 합니다. 네이즈비전투에서 찰스1세를 물리치고 의회군으로 승기를 기울이게 만들었으며 공화정과 자유주의를 이루어내었고 내란 후 영국을 안정시키기위해 스스로 호국경에 올라 독재정치를 펼쳤습니다. 크로웰에 대해서는 독재정치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보지만 정치적 안정을 회복시키고 입헌주의 정부체제의 발전과 종교적 관용에 공헌한 애국적 지도자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프랑수아 외젠: 프랑스,오스트리아,헝가리에서 복무한 군인으로 29세에 야전군최고사령관에 오를정도로 뛰어난 전략가였습니다. 특히 베오그라드전투에서는 병력이 4배나 많은 오스만투르크의 군대를 물리쳤습니다. 그는 군사적 승리를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단순한 도구로 생각하였으며 프리드리히 대제의 스승이었고, 나폴레옹이 역사상 최고의 7대 전략가들을 꼽을 때에도 후세에도 연구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인물로 지목한 사람이었습니다.(재밌는 것은 그는 25길더를 가지고 오스트리아에서 2500만길더로 늘릴 정도로 상재에도 재능이 있었습니다)
호레이쇼 넬슨: 영국의 해군제독으로 트라팔카해전에서 프랑스-스페인연합함대를 물리친 구국영웅입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가 이룩해낸 군사업적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일강에서 프랑스와 싸운 아부키르만 해전일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해전으로 지중해패권은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넘어가게 되었으며 "나일강의 남작"이란 칭호도 얻게되었으니까요.(물론 그래도 제생각에는 이순신장군님과 로이테르에게는 상대가 안된다고봅니다)
로버트 E.리: 미국남북전쟁당시 남부연합군의 사령관으로서 북군의 사령관을 여러번 교체시켰던 명장입니다.하지만 하느님의 뜻인지 당시 북군의 미드장군의 뛰어남인지는 모르겠지만 게티스버그전투에서 대패를 당하면서 승기는 북군에게로 넘어가게 됩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워싱턴대학학장이 되어 교육에 헌신했습니다.
야마모토 이소로쿠: 2차세계대전때 활약한 일본의 해군제독으로 유명한 진주만기습작전을 성공시켰습니다. 그러나 미드웨이 해전에서 패전하였고 이소로쿠를 두려워한 미국은 그를 암살하기위해 갖은 방법을 썼으며 결국 그가 타고가던 수송기를 격추시켜 죽였습니다. 이소로쿠가 죽은 후 일본의 해군력은 눈에 띄게 약해져갔습니다.(그는 군국주의를 지독히도 싫어했고 극우파에서는 죽이려고 했을정도였습니다)
조지패튼&버나드 로 몽고메리&에르빈 롬멜: 2차세계대전에 활약한 유명한 기갑군단장으로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알려져있으므로 넘어가겠습니다.
하인트 구데리안: 독일육군참모총장으로 전차를 이용한 전격전을 처음으로 창안해낸 명장입니다. 이분도 워낙 유명한 인물이라 넘어가겠습니다.
게오르기 쥬코프: 소련 지상군총사령관으로 레닌그라드에서 독일군의 진격을 막아내었지만 스탈린은 그를 견제하여 다른 장군으로 교체해버렸습니다. 결국 독일군에게 패전을 거듭하던 소련은 쥬코프를 다시 불러들였고 "인민위원회 방어지침 3호"에 의해 붉은 군대를 진격시켜 스탈린그라드에서 독일군을 포위,섬멸시켰으며 다시 베를린으로 진격하여 점령하였고 독일의 항복을 받아냅니다.(베를린점령은 사실 연합군의 멍청함에도 문제가 있었다고봅니다)전후에 스탈린과 흐루시초프의 대대적인 숙청에도 살아남은 정치적으로 수완이 뛰어났던 소련최고의 명장입니다.
메리트 프타: 이집트 멤피스에서 모시던 신이며 야금술과 가축의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습니다. 부인으로는 분노의 여신 세크메트를 두고 있습니다 (바람피면...ㅡㅡㅋ)
누조: 정확하게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황제의 비였던 양잠의 신 누조인 듯 합니다. 누조는 중국신화에서 인류에게 처음으로 옷을 만들어주었다고 전해집니다.(동이족이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나부 리마니: 현재까지 알려진 최초의 천문학자로 바빌로니아에서 살았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어떤 주어진 시각에 태양·달·행성 들의 위치를 표시하는 역표인 System A라는 것을 만들어내었습니다. 하지만 이 도표는 다소 불완전하여 약 1세기 뒤 키디누가 천체위치를 좀더 정확하게 찾을 수 있는 정확한 수학적 방법을 이용해 만든 System B로 바뀌게 됩니다.
소크라테스: 형이상학의 창시자이자 서양철학의 아버지. 세계4대성인이기도 한 너무나도 유명한 인물이므로 넘어갑니다.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제자로 이데아론을 주창했으며 저서로는 "대화"편 4부작시리즈가 유명합니다. 이 분 또한 설명하려면 A4용지로 최소 10장이상은 넘어가므로 패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의 제자이자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으로 그 때까지 알려졌던 모든 지식들을 총망라하여 체계적으로 구분하고 집대성하였습니다. 그는 현실주의적 과학방법론과 일원론을 주창했습니다만 일원론은 훗날 기독교 사상과 결합이 되면서 중세유럽의 전반적인 모든 사상에 암흑기를 가져오는 최악의 결과를 불러오게 됩니다.
유클리드: 기하학. 이 학문하나로 더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는 고대 최고의 수학자입니다. 프톨레미1세의 스승이기도 했으며 "기하학에는 왕도가 없습니다"라는 재치있는 명언을 남겼죠.(개인적으로 기하학은 재밌습니다)
클라디오스 프톨레마이오스: 그리스의 천문학자로 천동설을 바탕으로 행성의 움직임을 원운동으로 설명했으며 "알마게스트"라는 명저를 남겼습니다.(원래는 알마게스트란 이름이 아니였지만 프톨레마이어스에 경의를 표하고자 이슬람 천문학자들이 지어준 이름으로 아랍어로 가장 위대한 것이란 뜻입니다)
히파티아: 이집트의 수학자이자 신(新)플라톤학파계열의 여성철학자입니다. 당시 알렉산드리아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으로 불렀으나 그로 인해 기독교도들과의 다툼이 잦았고 결국에는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 성난 기독교도들에 의해 마녀로 몰려 신체가 조각나 죽었다고 전해집니다.(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극렬기독교도들은 자신들과 다르면 무조건 이교도로 모는 성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조충지: 남송 시대의 과학자로 대명력을 창안해내었고 윤달을 집어넣었습니다. 손재주도 매우 뛰어나 제갈량의 목우유마나 기기 등도 구현해냈다고 합니다.
아리아바타: 인도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로 지구자전설을 주장했으며 유명한 "아르야바티아"를 썼다고 전해집니다.
알 킨디: 이슬람 최초의 철학자로 지금도 "아랍인들의 철학자"라 불리며 존경받는 인물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적 신플라톤주의자들의 여러 철학적 문제들을 다루었으며 점성술/의학/인도 산수/글자놀이/칼 제조/요리 등 다방면에 걸쳐 뛰어났다고 합니다.(개인적으로 점성술,의학,산수는 이해가지만 칼제조와 요리라니..정말 손재주가 뛰어났던 것 같습니다)
알 콰리즈미: 당대 이슬람 최고의 수학자로 그리스와 인도의 지식을 종합하여 아랍과 유럽에 소개하였으며 그의 이름에서 아랍식 기수법을 뜻하는 알고리즘이 파생되었죠.
알 라지: 알 라지란 분은 두 분이 있습니다. 한분은 이슬람 코란의 해석으로 유명한 철학자 알 라지가 있으며 나머지 한 분은 세계최초로 환자를 격리검역하는 것을 창안해 낸 의사입니다. 누굴 가리키는지 몰라서 넘어가겠습니다.
알 하젠: 이슬람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로 광학이론을 성립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지금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빛은 눈에 보이는 물체로부터 오는 것이란 사실을 발견해내었으며 눈의 구조/빛의 반사와 굴절/렌즈와구면경의 상/무지개/대기굴절 등도 모두 이 분작품입니다. 저서로는 현재 "광학서"시리즈 7권이 전해집니다.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우스: 폴란드의 천문학자로 지동설을 주창했습니다. 비록 그가 주창했던 지동설은 지금의 지동설과 달랐고 지구의 자전과 공전에 대해서도 제대로 설명하지못했지만 프톨레마이오스 이후로 내려온 천동설을 뒤엎고 새로운 사상의 전환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높이 평가합니다.
프란시스 베이컨: 영국의 철학자로 고전경험론의 창시자입니다. 그는 글짓기에 뛰어나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는 세익스피어란 설도 있습니다. 또한 정치적으로도 수완이 좋아 토마스 모어와 함께 지금까지도 영국에서 존경받는 사법관입니다(하지만 청렴한 모어와은 달리 부정비리의 탐관오리였죠) 4가지 우상론이 매우 유명하고 실천철학을 창안해 "모든 과학에는 실험적 결과가 필요하다"라는 실험과학사상을 퍼트렸습니다.
티코 브라헤: 덴마크의 위대한 천문학자로 처음으로 초신성을 관측한 인물이며 당시 최고의 천문대로 유명한하늘의 별장 ㅡ"우라니보르그"의 천문대장이였습니다. 재밌는 사실은 그가 지독한 원시였고 그로 인해 당시의 열악한 관측도구에도 불구하고 오차범위 1도의 정확성있는 관측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모은 방대한 천문관측자료는 그의 제자에게로 이어져 빛을 발하게 됩니다.
요하네스 케플러: 티코 브라헤의 제자이자 독일의 천문학자입니다. 스승인 티코 브라헤의 관측자료들을 바탕으로 그는 케플러의 3법칙으로 알려진 타원궤도의 법칙/면적속도일정의 법칙/조화의 법칙을 발견해냅니다. 특히한 점은 케플러는 한 때 발렌슈타인 후작 밑에서 점성술사로 있었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왜 있었을까요?
아이작 뉴턴: 영국이 배출해낸 중세시대 최고의 과학자입니다. 모든 과학자들이 '단행본 가운데 사상 최고의 저작'이라 말하는 "프린키피아"의 저자이기도 하며 자신이 창시해낸 유율법을 이용하여 "만유인력의 법칙"을 확립하였으며 이론물리학의 기초를 쌓고......뭐 워낙 유명하고 쌓아놓은 업적도 대단해 이 분을 설명하다보면 한도끝도 없을 것 같아서 넘어가겠습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 이탈리아가 자랑하는 천문학자입니다. 갈릴레이는 뉴턴보다 먼저 세상에 등장한 인물로서 개인적으로 과학을 수학적 공식으로 풀어낸 최초의 과학자가 아니였을까 생각됩니다. 그는 진자의 법칙/위성관측/관성의 법칙 등을 발견해내지만 가장 유명한 것은 지동설에 대한 지지로 로마교황청에 회부된 사건입니다. 이 분도 워낙 유명하므로 패스.(갈릴레이가 죽은 후 그 해에 뉴턴이 태어났습니다. 혹시 환생이 아니였을까요? ㅡㅡ;;)
르네 데카르트: 프랑스가 낳은 당대최고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였으며 부업으로 생리학자와 물리학자도 겸했던 인물입니다. 개인적으로 유럽역사상 최고의 천재라고 생각하며 데카르트의 해석기하학이 없었다면 뉴턴은 만유인력을 수학적으로 풀지 못했을 것입니다. 또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양수와 음수,XY좌표 모두 데카르트가 만들어낸 것입니다. 어쨌든 수학과 철학은 데카르트를 기준으로 중세와 근대가 나뉠 정도로 엄청난 업적을 이루어낸 인물입니다.(나중에 물리학을 가지고 와류이론으로 뉴턴에게 덤볐다가 캐발립니다. 역시 물리학만큼은 중세유럽 물리학의 최고 정점인 뉴턴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나봅니다) 설명이 길어지므로 패스.
안토니 반 레벤후크: 네덜란드의 생물학자. 레벤후크가 발견해낸 여러 훌륭한 업적도 많지만 무엇보다도 그가 발명해 낸 현미경을 능가할 수는 없을 겁니다. 현미경을 통해 인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레벤후크의 현미경의 발명 하나만으로도 후대의 과학자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친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을겁니다.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 독일의 수학자이자 법학,과학,역사학,정치,기계 분야의 다방면에 걸쳐 활동하여 업적을 남긴 천재입니다만 동시대의 뉴턴과 데카르트가 워낙 뛰어나 빛이 바래는 인물입니다. 말년에는 가난하게 살다가 죽었고 미적분의 창시자로서 지금까지도 수학을 공부하는 많은 학생들의 원성을 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창안해낸 2진법이 없었다면 우리는 다른 프로그램체계를 사용했을지도 모르죠.
미하일 로모소노프: 러시아의 시인, 과학자, 언어학자, 계몽운동가입니다. 이 분도 대단한 천재로서 라부아지에보다 14년 일찍 질량보존의 법칙을 발견해냈고 80년이나 앞서 열역학의 기본원리를 주창했습니다. 또한 러시아어문법체계를 새로이 구축했으며 종래의 문어로서의 교회슬라브어와 구어의 사용 법칙을 확립하여 새롭게 통합,조정시켜서 새로운 문학용어를 만들어내 러시아문어를 풍부하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예전에 쓰던 음절시를 배격하고 러시아어에 맞는 음절억양시를 창안해내었습니다. 결국 이를 바탕으로 후대에서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 등 걸출한 작가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라부아지에: 프랑스의 화학자로서 우리에게는 질랑보존의 법칙으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그가 행한 가장 큰 업적은 당시 정설이었던 "플로지스톤"학설을 뒤엎고 새로운 화학명명법을 만들어내 "화학혁명"을 이룩해 근대화학의 기초를 쌓은 것입니다. 하지만 세금징수관으로 활동했던 이유만으로 프랑스 혁명 당시 안타깝게도 교수형에 처해집니다.
가우스: 독일의 수학자로서 고대의 유클리드-중세의 데카르트를 잇는 근대시대 최고의 수학자입니다. 정수론연구를 비롯해 가우스함수/가우스곡률/가우스미터/가우스사슬 등 19세기수학을 거의 혼자힘으로 한단계 끌어올렸습니다. 또한 수학적 엄밀성과 완전성을 도입하여 수리물리학으로부터 순수수학을 분리시켜 근대수학의 기초를 마련하였습니다.
존 돌턴: 영국의 화학자이자 물리학자로 원자론을 창안해낸 인물입니다. 기체의 압축에 의한 발열/혼합기체의 압력/기체의 확산혼합 등을 발견해냈었고 아보가드로의 분자설에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으며 검소하게 살았습니다. 또한 자신이 죽은 후에는 색맹연구에 자기의 눈을 써 달라는 유언을 남겼고 맨체스터에는 이런 그를 기념하여 돌턴의 거리를 만들었습니다.(돌턴 자신이 색맹이었으며 자신처럼 색맹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몸까지 기증하다니 인격적으로 정말 훌륭하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이클 패러데이: 영국의 물리학자이자 화학자입니다. 벤젠을 발견하였고 물리학의 전자기학 부분에서 여러 가지 전기의 동일성을 간파하고 보편성을 가진 전기의 통일개념을 만들어냅니다. 또한 패러데이암흑부/패러데이효과/반자성/전자기유도법칙 등을 발견하였으며 근접작용론을 제창하여 맥스웰의 전자기이론의 길을 열어준 인물이기도 합니다. 특히 그는 누구보다도 과학의 대중화에 앞장섰으며 과학이 인류의 복지를 위해서 사용되기를 바랬습니다. 그의 대중강연집인 "촛불 속의 과학 이야기"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양초는 자신의 몸을 희생해서 불을 밝힌다. 여러분들도 이렇게 자신을 태워가며 사회를 위해 빛나는 밝은 빛이 되기를 바란다." 또한 패러데이는 일생 동안 돈과 명예를 추구하지 않고 살았으며 왕립학회의장도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맥스웰과는 50년이 넘는 나이차이에도 불구하고 우정을 나눴습니다.(정말 영국에는 진짜 학자라 불릴만한 인물들이 계속 나오는군요. 돌턴도 그렇고 패러데이도 그렇고 다음에 나오는 맥스웰도 그렇고...)
제임스 클럭 맥스웰: 영국의 물리학자. 전자기학에서 장의 개념을 집대성했고 기체의 분자운동을 발견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맥스웰로 인해 한 과학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과학시대가 열렸다" 라고 말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맥스웰의 전자기장 이론이 없었다면 지금 사용하는 모든 전자제품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맥스웰은 자신보다 50년넘게 차이나는 패러데이와 망년지교를 나누었으며 독실한 기독교도로서 어려운 병자들을 자주 찾아가 그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기도했습니다. 또한 아내가 병들었을 때도 힘들어하는 그녀를 위해 자신의 불치병을 숨기고 간호했습니다. 뒤에 자신의 병이 악화되고 고통이 심해졌을 때도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아내를 간호할 수 없음을 안타까워했다고 합니다. 결국에는 48세의 나이의 비교적 이른나이에 세상을 떠납니다.(정말 자신의 불치병을 숨기고 병든 아내를 간호하다니 ...진정한 로맨티스트인 듯 싶습니다..)
루이스 파스퇴르: 프랑스의 미생물학자이자 화학자로서 "미생물은 공기 중의 먼지가 옮긴다" 라는 실험하나로 2000년간 이어져온 자연발생설을 완전히 뒤엎어버린 인물입니다. 또한 저온살균법을 만들어냈고 병은 세균과 박테리아가 옮긴다는 사실을 발견했으며 탄저병의 백신을 만들어내어 수많은 생명을 구했습니다.
찰스 다윈: 영국의 생물학자로 유명한 "종의 기원"에서 생물진화론을 주장해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불러온 인물입니다. 당시까지 지배하던 정설인 종교적유신론을 과학적무신론으로 반박하였으나 당시 사람들은 그가 주장한 인간은 원숭이에서 진화했다는 이론으로 그를 원숭이로 비유하며 비난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때까지 불변이라고 믿고 있던 것들을 부정하고 오직 진리를 위해 자신의 과학적 신념을 꺾지않고 당당히 맞서 싸운 점 하나로도 그에게 경의를 표하는데 부족함이 없다고 봅니다.
어니스트 러더퍼드: 영국의 물리학자로 원자모형을 발견해낸 것으로 매우 유명합니다. "알파선 산란" 실험을 통해 원자핵을 발견하였고 방사능이 물질의 원자 내부 현상이며 원소가 자연붕괴하고 있음을 지적하여 그때까지의 물질관에 커다란 변혁을 가져온 인물입니다.(재밌는 것은 그가 금을 만들수 있는 금속을 발견했지만 그것이 금보다 더 비싼 백금이라서 포기했다는 사실입니다)
마리 퀴리: 폴란드태생의 프랑스의 화학자로 퀴리부인으로 유명합니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라듐과 폴로늄을 발견,연구하여 노벨상을 두번이나 탔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퀴리연구소에 축적해놓은 강력한 방사성원들은 그의 딸인 이렌 퀴리에게 이어져 모녀가 모두 노벨상을 타는 진기록을 세우게됩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 독일태생의 미국의 이론물리학자로 물리역학에서 뉴턴과 아인슈타인 없이는 설명이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그가 내놓은 상대성이론은 너무나도 유명하고 현대과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심지어는 엠씨스퀘워광고에까지 영향을 끼쳤죠 ㅡㅡㅋ) 평화주의와 자유주의를 지지하던 그였지만 독일이 원자폭탄 연구에 몰두하자 이를 막기위해 미국이 먼저 원자폭탄을 가져야 한다는 편지를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보냅니다. 결국 이것은 인류역사상 최악의 무기를 만들어내는 악마의 작업인 맨하탄계획의 시초가 되버리니 정말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닐스 보어: 덴마크가 자랑하는 이론물리학자로 고전론과 양자론을 결합하여 전기양자론의 기초를 마련한 인물입니다. 그가 주창한 상보성원리는 제자인 하이젠베르크에게로 이어져 양자역학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아인슈타인의 절친한 친구이자 양자역학의 논쟁상대였으며 훗날 맨하탄계획에 참여했습니다. 재밌는 일화로 그가 당시 대학에서 교수가 낸 "기압계를 이용해 건물의 높이를 구하시오"라는 문제에 여러가지 대답을 내놓았는데 그가 내놓은 가장 재밌는 답안은 "기압계를 건물관리인에게 선물로 주고 빌딩의 설계도를 얻는다" 였답니다. 그리고 머리도 매우 커서 당시 미국으로 건너갈 당시 영국군수송기의 산소마스크가 맞지 않았다고 합니다.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독일의 이론물리학자로서 스승인 보어의 상보성원리에 자신의 불확정성원리를 더해 현대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양자역학을 창안해내었습니다. 그는 다른 과학자들과는 달리 독일을 떠나지않고 나치의 우라늄연구를 주도하면서 핵무기 연구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2차세계대전이 끝난 후 전범으로 붙잡혔으나 교묘한 발언으로 풀려났습니다. 그가 나치밑에서 일한 것에 대해 아직도 말이 많지만 정말로 한사람의 과학자로서 자신의 연구가 당시 사회적,정치적,국제적으로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 예상하지못했을까요?
엔리코 페르미: 이탈리아의 물리학자로 당대최고의 중성자연구의 권위자였습니다. 하지만 통계학을 배우는 학생들에게는 페르미통계로 더 알려져있죠. 어쨌든 맨하탄계획에 참여한 그는 세계최초로 원자로를 건설하였으며 그 안에서 제어된 연쇄반응을 통해 핵에너지를 해방시켜 플루토늄을 만들어냈습니다.
로잘린드 프랭클린: 영국의 여성생물학자로 DNA발견에 결정적인 역할을 끼친 인물입니다. 하지만 함께 연구하던 동료인 윌킨스가 그녀가 찍은 X선회절사진을 미국의 왓슨과 크릭에게 몰래 보여주었고 이들 셋은 그녀의 가설인 DNA 이중나선론을 훔치고 X선사진에 대한 사실을 숨긴채 먼저 세상에 발표합니다. 결국 노벨생리의학상은 윌킨스,왓슨,크릭 이 세사람에게 돌아가고 그에 앞서 3년전에 37살의 나이로 프랭클린은 난소암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그 후에 왓슨은 "이중나선"이란 책을 내면서 그녀에 대해 자신이 해석할 수 없는 데이터를 독점하고, 남자를 못된 소년처럼 대하고, 평균적인 영국 여성보다도 촌스러운 옷을 입은 ‘로지’로 묘사하여 깎아내렸습니다. 그러나 재미있게도 그로 인해 프랭클린의 공적이 조금씩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고 왓슨은 엄청난 비난에 시달려야했습니다. 현재는 그녀에 대한 것들은 새롭게 연구되고 있습니다.(개인적으로 왓슨과 크릭,윌킨스 이 세사람은 X새끼로 봅니다. 과학적명예와 업적에 눈이 멀어 남의 연구를 훔치고 사후에도 고인을 깎아내리려 했으니 인간으로서 존중할 가치는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안드레이 사하로프: 구 소련의 최고의 물리학자로 30대의 나이에 현존하는 세계최강의 무기인 수소폭탄을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수소폭탄의 실험결과는 참혹했고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을 염려한 소련은 그에게 "방사능이 적은 깨끗한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강요합니다. 그러나 이 일로 인해 엄청난 양심의 가책을 느낀 사하로프는 자신의 일에 책임을 지고 혼자서 반핵켐페인을 펼칩니다. 켐페인의 결과로 부분적이나마 미국과 영국,소련사이의 핵금지법안이 결의되었습니다. 또한 사하로프는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희생된 사람들을 도우며 소련당국의 인권유린에 관한 부당함을 온 세상에 알렸고 아프카니스탄과 체첸침공을 강력히 비판하였습니다. 이런 그를 괘씸하게 여긴 소련당국은 그의 명성때문에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고르키시로 강제이주시켜 7년동안 집밖으로 한발자국도 나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사하로프는 사면 후에도 소련사람들을 위해 헌법 제6항 "모든 권력과 정치는 공산당에게 위임한다"를 페지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결국 그가 죽고난 후 몇달 뒤 사하로프를 지지하는 많은 시민들의 힘으로 공산당의 독점권력권은 폐지됩니다.(개인적으로 과학자이기전에 한사람의 인간으로서 훌륭하다고 생각되는 분입니다. 냉전시대의 소련에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던 자리를 버리고 숱한 탄압을 견뎌내며 과학자로서의 양심을 지키고 세상의 평화를 위해 노력했다는 것은 정말 고귀한 이상과 대단한 용기를 지니지 않았다면 어려웠을겁니다)
하르쿠프: B.C 20세기에 활동하던 상(上)이집트 남부의 총독이자 파라오의 명으로 아프리카의 누비아 곳곳을 누빈 여행자입니다.. 특히 그는 3차여행때 누비아(수단)에서 "피그미"라 불리는 특별하고도 놀라운 물품을 손에 넣어 파라오를 기쁘게 했다고 전해집니다.(피그미는 조그만 키를 가진 아프리카의 부족입니다)
한노: B.C 5세기 인물로 사람들을 이끌고 아프리카 서부해안(카메룬지역)에 카르타고의 식민지를 건설했다고 합니다. 티미아테리온(모로코의 케니트라)을 건설했으며, 솔로이스(메도우자 곶)에 신전을 세웠습니다. 또한 지금의 모로코와 그 주변에 카리콘테이코스(그리스어로 카리아의 요새라는 뜻)와 아크라(아가디르)를 포함한 5개 도시를 더 세웠다고 전해지며 더 남쪽으로 내려가 훗날 무역 중심지가 될 케르네를 리오데오로지역에 건설했다고 합니다.(실존인물이냐 아니냐에 대한 논란이 많은 편입니다)
피테아스: B.C 3세기의 그리스의 천문학자이자 지리학자입니다. 그는 유럽 해안선을 따라 브르타뉴 끝까지 간 뒤 벌리리엄(콘월)까지 갔으며 영국의 많은 지역을 걸어서 탐험했는데 그 거리를 정확히 6400km로 측정해놓았고 영국 북부에서 마살리아(마르세유)까지의 거리를 1680km(실제는 1720km)로 측정했습니다. 또한 북유럽의 몇몇 나라들을 방문했으며 발트 해의 비수아 강까지 간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거주하는 최북단의 섬인 툴레(아이슬란드)에 관해 "이 섬은 영국 북부에서 배로 8일이 걸리며, 북극권까지 뻗어 있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는 여행 중 겪는 세세한 사항들을 모두 기록했으며 북극성이 정극의 위치에 있지 않는 것/달이 조류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들을 발견했습니다.
장건: B.C 2세기의 인물로 한무제의 명을 받고 중국 역사상 최초로 서역 교통를 개척하였습니다. 오손에서 그가 파견한 부사들이 서역 제국의 사절과 대상들을 데리고 돌아왔으며 그의 여행으로 서역의 지리,민족,산물 등에 관한 지식이 중국으로 유입되어 동서간의 교역과 문화가 처음으로 통하게 됩니다.
아레타스 3세: B.C1세기 인물로서 나마테스의 왕입니다. 에돔/모압/네게브/다마스커스/ 코엘레시리아(레바논)까지 정복했으나 훗날 로마의 폼페이우스에 의해 정복당하고 봉신이 되어 부귀영화를 누렸다고 합니다.
리프 에릭슨: 11세기 북유럽 바이킹의 선장입니다. 콜럼버스보다 몇세기나 앞서 아메리카를 밟았던 유럽최초의 인물이지만 북아메리카에 도착한 후 곧 원주민들에게 곧 쫓겨났습니다.(세계최초는 아시아인)
왕안석: 송의 학자이자 관리로 당송팔대가 중 한명이기도 합니다. 중국 역사상 가장 파격적인 신법개혁(청묘법,시역법,방전균세법,보갑법,모역법)으로 단기간에 송의 재정을 적자에서 흑자로 바꿔놓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실시했던 법들은 훗날 영세농민들의 목을 조르게 됩니다.
엔리코 단돌로: 11세기 베네치아 공화국의 원수입니다. 당시 어려운 상황에 처한 베네치아에 민법과 헌법제도를 도입해 사회적개혁을 단행했으며 아드리아해와 동방을 이용한 무역을 통해 베네치아의 영토와 재정을 순식간에 늘리고 제4차 십자군원정때는 비잔틴제국을 멸망시킵니다. 매우 침착하면서도 대담한 인물이었으며 진정한 공화주의자로 멸망한 비잔틴제국을 대신해 라틴제국이 세워졌을때 가장 많은 공을 세웠음에도 황제자리를 거절하였습니다.
마르코 폴로: 13세기 베네치아의 상인으로 유럽과 아시아를 넘나들었고 진실과 거짓에 대한 논란이 많긴 하지만 유명한 "동방견문록"의 저자입니다. 엄청나게 유명한 인물이므로 넘어갑니다.
이븐 바투타: 13세기 모로코 출신의 이슬람 여행가로서 이집트,시리아를 거쳐 메카로 성지순례 하였고 이라크, 페르시아, 중앙아시아, 인도 등을 여행했습니다. 당시 알려진 3개대륙인 아시아,아프리카,유럽을 모두 여행한 개인적으로 중세시대 최고의 여행가라 생각합니다.
리차드 위팅턴: 13세기의 잉글랜드의 상인이자 런던시장으로서 영국민담의 주인공인 딕 위팅턴으로 더 알려져있습니다. 아버지는 기사였지만 런던에 상점을 열고 볼링브룩(훗날 헨리 4세)과 같은 귀족들에게 벨벳과 단자를 팔아서 엄청난 부를 거머쥐었습니다. 그의 부는 엄청나서 헨리 4세와 헨리 5세에게 많은 돈을 빌려주었을정도이며 막대한 재산을 자선과 공공이익을 위해 유산으로 남겼습니다.
지오반니 드 메디치: 14세기 메디치가의 가주로서 피렌체공화국에 큰 기여를 하여 그 공로로 국부(國父)란 칭호를 받았습니다. 그는 유럽의 16개 도시에 은행을 세웠고 교황청의 재정을 장악하여 막대한 재산을 축적했으며 사재를 시정에 투입하였고 고전적이상을 존중하고 인간의 삶에 관심을 가진 인문주의자로서 학예를 보호,장려했습니다. 이는 그의 후손들에게로 대대로 이어져 르네상스시대를 열었던 인물들-치마부에, 지옷토, 다 빈치, 미켈란젤로, 브루넬스키, 알베르티, 단테, 마키아벨리, 갈릴레오 등이 피렌체에 등장할 수 있었습니다.
정화: 14세기 명나라의 환관 겸 해군제독으로 동남 아시아에서 서남 아시아에 이르는 30개국을 탐험했습니다. 그로 인해 동남아시아 각지의 화교들이 크게 발전하였고 바스코 다 가마보다 80년앞서 인도양을 탐험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바스코 다 가마: 15세기 포르투칼의 선장으로 남아프리카를 돌아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하였으며 이는 곧 각국의 상인들과 왕들에게 경쟁심을 불러왔고 상업혁명이 일어나 은의 가격이 폭락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태들은 대항해시대를 알리는 신호였죠.(덕분에 유럽인을 제외한 민족들의 수난기가 시작됩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15세기 포르투칼의 선장으로 바스코 다 가마보다 먼저 살았으며 아메리카를 발견한 유명한 인물입니다. 워낙 유명하므로 넘어갑니다.(개인적으로 발견은 잘못된 것 같습니다. 발견이라면 아메리카에서 먼저 살고 있던 원주민들-잉카&아즈텍인들은 뭘로 불러야할지..)
페르디난드 마젤란: 15세기의 인물로 원래는 포르투칼인이였지만 나중에 스페인으로 귀화했습니다. 세계일주를 최초로 항해하였으며 마젤란해협/태평양/마리아나제도/필리핀 등의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항해 도중 마젤란은 막탄섬에서 전사하고 포르투칼로 살아돌아온 선원은 18명이 전부였다고 합니다.
쟈크 카르티에: 15세기 프랑스의 탐험가로 콜럼버스보다 먼저 아메리카를 찾아냈으며 몬트리올과 퀘벡을 처음 밟은 유럽인입니다. 그의 영향으로 지금도 캐나다의 몬트리올과 퀘벡에서는 프랑스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라자 토다르 마를: 16세기의 인도무굴제국 제3대황제인 아크바르 황제의 재정 대신으로 토지와 세제 개혁을 단행하였습니다.(참고로 라자는 산스크리트어로 왕국의 한 지방을 다스리는 자를 말합니다. 왕은 "마하라자"라고 부릅니다)
안토니 반 디멘: 17세기 네델란드의 동인도 총독으로 말라카를 점령하여 바타비아(자카르타)를 동인도무역의 중심지로 번영시키고 "바타비아 법규"를 편찬하는 등 동인도회사의 황금시대를 이룩하였습니다. 또한 아벨 태즈만(호주의 태즈메니아지역이 이사람의 이름에서 파생)을 파견하여 뉴질랜드섬과 반디멘스랜드를 발견하였지만 당시 네덜란드에서는 쓸모없는 땅으로 인식하여 탐험을 더이상 그만둡니다. 이 어이없는 판단으로 훗날 제임스 쿡에 의해 호주와 뉴질랜드는 영국의 손으로 들어가버리고 대영제국의 황금기의 기반이 되버립니다.
토마스 로: 17세기 영국의 외교관이자 친선대사로서 무굴제국에 파견되어 동인도회사의 특권확대에 힘썼습니다. 그 후에는 오스만 투르크대사, 스웨덴과 폴란드 사이의 조정인 등으로도 활약하였습니다.
샤 자한: 17세기 인도무굴제국의 제5대황제로서 무굴제국의 전성기를 이뤘으며 왕비 아르주만드 바누(뭄타즈 마할)를 위해 아그라에 타지마할을 세운 것으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타지마할을 세우기 위해 엄청난 국력을 낭비했으며 결국 아들 아우랑제브6대 황제에 의해 강제 폐위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아버지를 위한 마지막 자비로 타지마할에서 2km떨어진 아그라포트의 감옥으로 보냈고 샤 자한은 8년을 눈물로 보내며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담 스미스: 18세기 영국의 계몽주의자이자 정치경제학의 창시자입니다. 그 당시 유럽각국은 중상주의의 한계점이 드러나고있는 상황이었는데 이러한 때 경제학 최고의 명작"국부론"이 세상에 등장하게 됩니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을 강조하며 "개인의 사사로운 이익추구가 사회전체의 이익으로 연결될 수 있다"라는 길을 열어줌으로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발판을 마련합니다. 이는 곧 영국의 정책에 반영되었고 대영제국의 기초가 되었으며 경제대공황이 터지기전까지 각국에서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밀과 마르크스에게도 엄청난 영향을 끼쳤습니다.
제임스 쿡: 18세기 영국의 선장으로 최초로 남극해를 탐험한 인물이었으며 미지의 남방대륙이 존재하지않음을 증명해내었습니다. 그는 태평양상의 대부분 섬을 탐사하여 해도를 작성하였고 대양항해의 가장 큰 장애물이었던 괴혈병을 극복하였으며 항해사상 최초로 크로노미터를 활용함으로써 경도를 정확하게 측정해 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에서 해군대령의 자리까지 올라간 입지전적인 인물로서 훌륭한 인품을 지녔으며 원주민이야말로 그들 땅의 타고난 주인이라고 생각해 발견한 지역의 이름을 국왕이나 국가의 이름이 아닌 원주민들이 부르는 이름으로 지었습니다. 또한 그는 투파이아 족장과 인종을 뛰어넘는 우정을 나누었으며 당시 영국과 독립전쟁을 벌이던 미국의 벤자민 프랭클린 대통령조차 "인류를 위해 가치있는 발견을 한 그의 공적을 기린다"라며 미 함대에게 쿡의 함선을 공격하지 못하게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하와이에서 원주민의 곤봉에 맞아 익사하였으며 현재 영국에서는 영국이 해양대국으로 발전할 수 있게 했던 그에게 "캡틴" 이라는 제독으로서 최고의 칭호를 붙이고 있습니다.(개인적으로 세계최고의 탐험가라 생각합니다)
코넬리어스 밴더필트: 18세기 미국의 사업가이자 해군제독으로 해운업과 철도사업을 통해 1억 달러 이상의 재산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뇌물과 부정같은 불법적인 수단으로 증기선과 철도와 관련된 이득을 챙겼으며 당시 미국경제의 10%가 그의 손안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 후 밴더필트가문은 부호가문으로 대대로 이어져내려갔습니다.그리고 밴더필트가문의 후손 중 여성시인으로 유명한 글로리아 밴더필트마저 손수 디자인한 청바지로 대성공을 거뒀다고하니 확실히 상재에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핏줄인 것 같습니다. 또한 그녀의 계모는 남성편력으로 유명한 파멜라 딕비로 클린턴을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코넬리어스는 미국역대갑부 3위이며 밴더필트가문은 미국 5대부호가문 중 하나입니다)
알렉산더 매켄지: 18세기 영국의 탐험가로 미국 메켄지강의 명명자이기도 합니다. 백인으로서는 북미지역을 처음으로 횡단했으며 이는 당시 미국 대통령인 토마스 제퍼슨의 서부개척을 불러오게 되었고 훗날 미국역사상 가장 더러운 인디언 학살을 불러오게 됩니다.(재밌는 사실은 제퍼슨은 나폴레옹으로부터 루이지애나주를 1500만 달러에 사들였는데 이 거래는 미국역사에서 두번째로 중요하며 세계역사상 가장 큰 땅을 가장 싼 값에 거래한 사건입니다)
존 스튜어트 밀: 19세기 영국의 경제학자이자 철학가,사상가로서 아마도 영국최고의 천재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3살에 라틴어, 8에 그리스어, 12살에 논리학을 터득하였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공리주의를 주장하였으나 훗날 개량적 사회주의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주장한 사회주의는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중시하였고 이를 "만족한 돼지가 되느니 차라리 불만족한 인간이 되는 편이 더 낫고 만족한 바보가 되느니 불만족한 소크라테스와 같은 사람이 되는 게 더 낫다" 라는 말로 표현하였습니다.
앤드류 카네기: 20세기 스코틀랜드 이민자 출신의 미국의 사업가로 "강철왕"이란 별명으로 더 유명합니다. 철강업의 수요 증대를 예상하고 투자를 함으로써 막대한 수입을 얻어냈고 합병전략으로 미국철강시장의 65%를 가진 US스틸사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합명을 마지막으로 실업계를 은퇴하였고 죽는 날까지 가진 재산을 사회복지를 위해 썼습니다. 특히 교육과 문화사업에 힘썼으며 "인생의 전기에는 부를 축적하고 후기에는 사회복지를 위한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실천한 존경할만한 몇 안되는 훌륭한 기업가입니다.(카네기는 미국역대갑부 7위로서 20세부터 일주일에 50센트씩 저축을 하였고 그 돈을 굴리고 굴려 부자가 되었답니다)
존 데이비슨 록펠러: 20세기 유대인으로서 미국의 석유왕이며 교회에서는 십일조를 꼬박꼬박 잘내면 록펠러처럼 된다고 말하는 기업가입니다. 그는 스탠더드 오일 트러스트(미국정유소의 95%를 가진)를 설립하였으며 초대 사장에 취임하여 33세에 이미 백만장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셔먼독점금지법(반트러스트=이 법은 한 회사가 한 업종을 독점하지 못하게 하는 미국의 법입니다)"법을 위반하여 회사는 해체되었으나 교묘한 방법으로 뉴저지스탠더드회사(지금의 엑슨모밀)를 설립하여 해외에 각종 유전과 주유소를 소유한 회사로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또한번 반트러스트법을 위반, 해체되게 되고 그는 은퇴를 선언하고 자선사업에 막대한 돈을 씁니다.
(세계역사상 제일의 갑부이며 모건가문과 함께 미국경제를 양분하는 집안입니다만 시오니즘과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참고로 현재 세계 4대오일메이저(엑슨모빌, 쉐브런-텍사코, 로얄더치-쉘, BP) /미국-유럽의 5대곡물메이저(미국의 카길과 ADM, 프랑스 루이드레뷔스, 브라질 벙기, 스위스 가낙)/뉴욕타임즈,워싱턴포스트,윌스트리트저널 등이 유대계자본회사이며 거의가 아슈케나지 유대인계열입니다)
존 마이너드 케인스: 20세기 영국의 경제학자로서 자신이 지은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이란 책에서 완전고용을 실현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유방임주의가 아닌 정부의 보완책(공공지출)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 이론에 입각한 사상의 개혁을 "케인스 혁명"라고 부르고 있으며 현재는 자유방임주의를 사라지고 그의 수정자본주의이론이 각국의 정책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케인스가 내놓은 의견에 따라 맞춰진게 미국의 뉴딜정책이며 현재까지도 경제회복정책의 본보기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가브리엘 샤넬: 20세기 프랑스의 여성디자이너로서 "코코"란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20세기 패션역사를 말할 때 빠질 수없는 인물로서 크리스챤 디올의 "A라인"과 함께 "샤넬라인"으로 패션계의 역사를 바꿨습니다. 그녀에 대해서 부자 애인을 잘 둬서 성공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그녀는 매우 슬픈 인생을 살았고 천부적인 노력과 재능으로 이겨낸 사람입니다.어렸을 때부터 몽유병이 심해 죽을 때까지 가죽끈으로 몸을 묶고 자야했으며 돈을 벌기위해 20세에는 밤무대가수로 활동했습니다.(코코란 별명은 이때 부른 노래제목입니다) 또한 어린이들을 매우 사랑했지만 자신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몸을 가졌고 첫 결혼에 실패하고 두번째 결혼을 준비할 때는 사랑하는 사람이 결혼식날 죽어버렸죠. 결국 죽을 때까지 그녀는 디자인을 하며 슬픈 삶을 살아가다가 자신의 아파트에서 79세의 나이로 쓸쓸히 죽었습니다. 그녀의 부티끄인 "메종 샤넬"은 16살에 이미 국제대회에서 우승한 천재디자이너 "칼 라거펠트"가 이끌며 명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A라인은 A자 모양으로 위쪽이 작고 옷 아래쪽을 향하여 넓게 퍼진 실루엣이며 샤넬라인은 스커트의 길이는 무릎 밑까지 오고 웨이스트라인이 허리 밑으로 내려간 스타일입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A라인은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대신 기능성이 많이 떨어지고 샤넬라인은 실용성과 기능성을 중시하며 누구에게나 어울리는 스타일입니다)